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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단편. <흔적이라도>, 감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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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_image 작성자 no_profile 감쟈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1건 조회 3,610회 작성일 23-02-22 0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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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적이라도>


감쟈


수학 학원을 마친 준서와 친구들이 놀이터에 모였다. 친구들은 하나둘 벤치에 모여 앉아 모바일 배틀그라운드를 켰다.

준서도 친구들 틈에 끼어 앉아 핸드폰을 들었다.


-알림: 우리아이 핸드폰 보안관, 하루 이용시간이 초과되었습니다.


-나 오늘 두 시간 넘게 써서 핸드폰 못 해


이미 친구들은 준서를 빼고 게임을 시작했다. 친구들 어깨 너머로 게임 화면을 보던 준서가 “나도 한판만”이라 말했지만, 누구도 대꾸하지 않았다. 한껏 들뜬 친구들의 목소리와 게임 속 총성을 뒤로한 채 준서는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겨울 방학인데 학원만 다니고, 핸드폰도 두 시간밖에 못 하고 짜증나! 


준서는 집까지 걸어가며 의리 없는 친구들과 지루한 겨울방학을 혼잣말로 불평했다. 준서가 아파트 현관에 도착했을 때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준서가 소리의 근원을 찾아 화단 뒤편으로 갔을 때 펜스에 머리가 끼인 고양이를 만났다. 준서가 찌그러진 펜스를 살짝 벌리자 고양이는 머리를 빼냈다. 고양이는 잠시 준서의 손에 머리를 비비다 다른 고양이가 보이자 자리를 비켰다. 준서는 한참을 그 자리에 서서 손에 묻은 고양이 털을 만지작거렸다.


그날 저녁 준서가 말했다.


-엄마 우리 고양이 키우자


돌아오는 대답은 단호했다.


-애 둘 키우는 것도 힘들어. 고양이 키우고 싶으면 너희 중 한 명이 나가. 그리고 키우자.


-아 집에 혼자 있으면 심심하다고, 나도 고양이 키우고 싶다고


엄마는 준서의 징징거림을 뒤로 한 채 저녁을 준비했다.


-나와서 밥 먹어. 


준서가 신경질을 내며 대답했다.


-배 안 고파요!


가족들은 아무렇지 않은 듯 식사를 시작했다. 준서는 꽉 닫힌 방문 너머로 수저가 달그닥거리고, 컵에 물이 채워지는 소리를 들었다. 준서는 일어나 문손잡이에 손을 살짝 대었다, 다시 의자에 앉아 문으로부터 등을 돌렸다.


식사를 마치고 얼마 뒤 엄마가 준서 방에 들어왔다. “배 안 고파? 밥 먹어.” 준서는 입을 꾹 다문채 고개를 저었다. 엄마는 준서 옆에 앉아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준서야 엄마도 고양이 좋아해. 그런데 동물을 키우는 건 가족처럼 평생 같이 살 동생 같은 존재가 생기는 거야. 우리 가족은 모두 바빠. 엄마 아빠는 회사에 다니고 너랑 형도 학교에 다녀. 그럼 그 시간 동안 고양이는 누가 돌봐줄 수 있을까?

반려동물은 자라지 않는 갓난 아기가 늘 집에있는 거랑 똑같은 거야. 이제 엄마가 왜 그랬는지 이해하겠지?


한동안 고개를 숙인 채 가만히 있던 준서가 입을 열었다. 


-그래도 키우고 싶어요


엄마가 언성을 높였다


-그럼 우리 중에 한 사람 나가고 고양이 데려오자. 누가 나갈래? 


엄마는 방문을 닫고 나가버렸다. 한바탕 소란이 끝난 집에 싸한 적막이 가득했다.


다음날 엄마는 준서를 데리고 마트에 갔다. 엄마는 준서에게 먹고 싶은 건 뭐든지 담아도 좋다 말했다. 준서는 그런 엄마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입을 댓 발 내민 채 과자 몇 봉지를 집은 게 전부였다. 엄마는 준서가 좋아하는 삼겹살을 고르며 국으로 끓일 얼갈이도 한단 담았다.


집에 돌아온 엄마는 저녁을 준비했다. “어머!” 얼갈이를 씻던 엄마가 소리를 질렀다. 얼갈이에는 민달팽이 한 마리가 붙어있었다. 엄마는 손을 흔들어 얼갈이에 붙은 달팽이를 싱크대로 떨어트렸다. 형이 플라스틱 컵에 달팽이를 옮겨 담으며 말했다.


-저거 밖에 버리고 올게요


-안돼 지금 버리면 얼어 죽을 거야


준서는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으로 말했다.


-아직 살아있는데 버리면 불쌍하잖아, 그러니까 내가 키우고 싶어


엄마는 준서를 가만히 바라보다 말했다.


-키우고 싶다면 조건이 있어. 달팽이는 냄새가 심해서 집에서 계속 키울 수 없어. 봄이 되면 화단에 풀어주기다. 그리고 준서 네가 키우자 했으니까 달팽이에 관한 모든 일은 네가 책임져야 해. 정말 책임질 수 있겠니?


준서는 이번 주 들어 가장 밝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네! 할 수 있어요.

-내가 키우는 거니까 이름도 내가 정할래. 핑핑이는 너무 흔하고……, 팽이로 하자 팽이


 그날 이후 준서의 하루는 팽이로 가득했다. 아침이면 플라스틱 컵에 상추를 넣어주고 하루 종일 상추를 야금야금 갉아 먹는 팽이를 구경했다. 준서는 하루에 한 번 헌 상추를 버리고 새 상추를 컵에 넣어주었다. 팽이가 가족이 된 지 사흘 뒤 형이 준서를 불렀다. “준서야 팽이 계속 컵에서 키울 거야? 달팽이는 흙에서 사는 동물이야.” 준서의 표정엔 당황한 기색이 가득했다. 준서는 컵을 이리저리 돌려가며 잔뜩 쌓인 초록색 똥과 벽면을 타고 흐르는 점액을 발견했다. 준서는 일주일에 삼천원씩 들어오는 용돈과 저금통 속 돈을 합쳐 만원을 쓸 수 있었다. 준서는 지갑에 천원 열 장을 챙겨 꽃집에 갔다.


-어떤 흙 찾으세요?


-달팽이 키우려고요


점원이 안내해준 3번 코너에는 한 포대에 500원 하는 흙부터 조그만 팩에 삼천원하는 흙까지 다양한 종류의 흙이 있었다. 준서는 잠시 생각하다 삼천원짜리 코코피트라는 흙을 골랐다. 준서는 흙을 산 뒤 맞은편 문구점에서 어항을 샀다. “집이 넓어야 답답하지 않겠지.” 사천원 어항과 육천원 어항 중에 망설임 없이 육천원짜리 어항을 골랐다. 흙과 어항을 들고 집으로 가는 준서의 발걸음은 어린이날 백화점에서 가지고 싶었던 장난감을 골라오는 발걸음과 비슷했다.


준서는 집에 오자마자 팽이의 새로운 집을 준비했다. 어항을 씻고, 흙을 평평하게 깔고, 컵을 조심스레 기울여 팽이를 옮겼다. 낯선 환경에 긴장하는 것도 잠시, 팽이는 어항의 모든 면을 돌아다녔다. 손가락 한 마디 정도였던 팽이는 어느새 새끼손가락 길이만큼 몸을 늘렸다. 준서는 컵 안에서는 볼 수 없었던 팽이의 역동적인 모습을 확인했다. 배를 꿀렁거리며 부드럽게 미끄러지는 발걸음, 쉴 새 없이 흔드는 더듬이. 점액이 내뿜는 비린내마저 향기롭다는 듯이 준서는 어항에 머리를 박은 채 팽이를 지켜봤다.


가족이 모두 방에 들어간 늦은 저녁, 준서는 어항에 대고 속삭였다.


-팽이야 너무 걱정하지 마. 막상 봄이 되면 엄마도 정이 들어서 너를 버리지 못할 거야. 그러니까 너는 쑥쑥 크기만 하면 돼.


어느새 준서가 팽이를 키운 지 한 달이 지났다. 분무기로 어항에 물을 뿌리던 준서에게 엄마가 말했다.


-뭐든지 적당히 무심해야 오래 사는 거야


엄마는 장을 봐 오면서도 팽이가 먹을 상추는 한번 도 사 오지 않았다. 준서는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분무기를 만지작거렸다.


 추위가 살짝 풀린 늦겨울의 아침, 준서는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새 상추를 넣기 위해 어항 뚜껑을 열었다. 평소라면 구멍이 나 있어야 할 상추가 그대로였다. “팽이야 어디 아파?” 준서는 상추를 들추며 팽이를 찾았다. 불안한 마음으로 흙까지 파헤쳤지만, 어항 어디에도 팽이는 보이지 않았다. 그제서야 준서는 팽이가 어항 밖으로 탈출했음을 알았다.


온 가족이 팽이를 찾기 시작했다. 조용하게 웅크리고만 있을 줄 알았던 팽이는 어두운 밤 어항을 뚫고 멀리 가버렸는지 보이지 않았다. 스마트폰 손전등을 키고 온 집안을 헤집던 준서는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한참을 멍하게 앉아있던 준서는 벌떡 일어나더니 달팽이는 도저히 갈 수 없는 베란다 벽장과 세탁기 안까지 들여다보았다. 얼마 뒤 형이 어항을 올려둔 장식장과 벽 사이 조그만 틈에서 팽이를 찾았다. 더운 공기에 바싹 말라버린 팽이는 의자에 짓눌린 검은 지우개밥같았다. 형은 주방에서 나무젓가락을 가져와 팽이를 떼어냈다. 형이 두루마리 화장지를 둘둘 말아 팽이를 집으려 할 때 엄마가 형에게 크리넥스 티슈를 건넸다. 형은 티슈로 팽이를 집은 뒤 두어번 접어 변기에 넣고 물을 내렸다. 준서는 아무 말 없이 팽이의 마지막을 보고 있었다. 물은 소용돌이를 만들며 내려가다 아무 일 없듯 다시 조용하게 차올랐다.


팽이는 조용했고, 대부분 몇장의 상추에 가려져 있었다. 그렇지만 아침이면 구멍이 뻥 뚫린 상춧잎으로 자신이 잘 먹고 있다는 것을 알렸고, 가끔은 온몸을 늘어트려 어항 벽에 붙어 준서를기쁘게 했다. 그리고 꾸들하게 마른 채 변기 속으로 사라졌다.


팽이는 이른 봄을 맞았다.


준서는 추운 날씨에도 싱싱한 상추를 먹이겠다며 이틀에 한 번 길 건너 큰 마트에 다녀오는 것도 힘들어하지 않았고, 오버워치 전리품 상자를 사려 모아둔 용돈도 팽이를 위해 망설임 없이 썼다. 준서는 매일 침대에 가기 전 팽이에게 봄이 올 걱정은 하지 말라고, 너는 잘 크기만 하면 된다고 속삭였다.


준서는 아무 말없이 소파에 앉아있었다. 가족 모두가 준서의 눈치를 봤지만 선뜻 말을 걸지는 않았다. 한동안 가만히 있던 준서가 정적을 깨고 입을 열었다.


-엄마 달팽이는 가족이었지?


엄마가 위로하듯 대답했다. “그럼 같이 살면 가족인 거야.” 


준서가 엄마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럼 달팽이 나갔으니까 우리 고양이 키우자. 

스핑크스는 털이 덜 빠지고, 샴은 말을 잘 듣는대, 그리고 예진이는 먼치킨 키우는데 엄청 작아서 품에 쏙 들어온대.


팽이가 마지막으로 머문 자리에는 얼룩이 남아있었다.


준서가 고양이를 키우자고 엄마를 조르는 소리를 들으며 형은 좀처럼 지워지지 않는 팽이의 흔적을 물티슈로 닦았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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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지지님의 댓글

profile_image 지지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넘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많은 것을 담고 있군요! 맞고 틀리는 것은 없는데도 사람마다 생명을 대하는 법이 다른 것은 참 의미심장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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