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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커튼 뒤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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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_image 작성자 양승두 이름으로 검색 댓글 0건 조회 589회 작성일 23-04-06 2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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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 안의 온기가 사라지기 전에 나는 휴대폰을 닫았다.


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와 문고리를 걸어 잠그곤 현관문에 등을 기댄 상태로 주르륵 미끄러져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방 안은 햇빛을 반사해 반짝이는 먼지들이 노곤하게 움직이며 떠돌고 있었고, 먼지들의 움직임을 지휘하듯 시계의 초침소리가 규칙적으로 울리며 적막한 공간을 그 소리로 가득 메우고 있었다.


'드르륵'


핸드폰이 다시 울렸다.


발신자 확인.


익숙한 이름이었다.

다만 앞으로는 더 이상 보고싶지 않은 이름.


핸드폰을 저 멀리 옷가지위에 내던지고는 침대에 쓰러지듯 누웠다.

그리고 창문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햇빛을 가만히 바라보다 문득 엷은 민트빛의 커튼에 시선이 닿았다.

그리고는 생각했다.


'가까운 인연이라는 것은 결국 커튼 뒤에 숨은 사람과도 같지 않을까'


하고.


커튼에 가려진 누군가는 결국 인지하지 않으면 모른다.

그곳에 누군가가 있다고 인지하고 나면 부자연스러운 커튼의 실루엣이나, 커튼 밑으로 삐져나온 발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며 대상의 존재를 인식하지만, 누군가가 있으리라 생각하고 있지 않으면 유심히 보기 전까지는 그 곳에 누군가가 있다는 것을 인식하기 어렵다.


가까운 인연 (대부분은 가족이나 연인, 친한 친구일 것이다.) 도 그렇다고 생각한다. 나에게 너무 가까이 있어 무의식중에 그 사람도 하나의 독립된 개체라는 것을 망각해버리는 것. 내가 내 방의 커튼 뒤에 누군가를 숨긴 이후에 그것을 잊어버리고, 내 방의 풍경이 언제나처럼 나 홀로 존재하는 편안하고 타인의 시선을 신경쓰지 않아도 되는 곳이라 착각하게 되는 것과 같다고 말이다.


나 홀로 있다고 생각한 방에서 불현듯 커튼이 혼자 움직이거나, 갑자기 사람이 튀어나온다거나 하면 어떤 사람이라도 놀라게 되겠지. 패닉이 오거나, 자신의 방에 누군가가 무단으로 침입했다는 사실에 분노하는 사람도 있으리라 생각한다.



해서 나는 내 마음속에 있는 자그마한 방. 그 곳에 걸려있는 커튼 뒤는 내 방 바깥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아예 내 손이 닿지 않는 공간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완전한 내 공간도 아닌.

완전한 바깥과, 완전한 내 공간. 그 사이에 있는 림보와도 같은 공간.

그리고 내가 누군가를 그곳에 들여보낸다면.

그 곳에 존재하는 누군가가 갑자기 움직이던, 커튼을 흔들던 나는 당황하지 않겠지.

이미 처음부터 누군가가 있음을 인지하고 있고, 커튼 뒤는 내 공간이 아닌 곳이라 생각하고 있기에

약간의 긴장감을 가지고 계속 그 곳을 주시하며 누군가가 있음을 잊지 않을 것이다.

그랬기에 나도 이 핸드폰을 울리게 만드는 당사자가 그래주기를 바랬었다.

하지만 상대는 나를 자신의 방 안에 들여보내고 완전히 잊어버렸다.

방 안에 들어선 내가 커튼 뒤로 향하자, 마치 처음부터 아무도 없었다는 듯, 

방 안에 있는 나의 시선과 감정따위는 생각하지도 못하고 내키는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래서 내가 작은 목소리를 내었을 때 왜 자신의 허락을 받지 않았냐며, 어째서 네 마음대로 움직이냐며 그리도 나에게 모질게 굴었겠지.


나는 계속해서 울리는 핸드폰을 열어 상대에게 문자를 하나 남기곤 미련없이 핸드폰의 전원을 껐다.

방 안은 더이상 드르륵대는 잡음 없이, 다시 초침소리만이 가득한 평소의 풍경으로 돌아왔다.

나의 마음도 하루 빨리 평소의 풍경으로 돌아오길 기대하면서.


[네가 사랑하던 나는, 너의 사랑은 언제나 움직이지 않고, 그것은 커튼 뒤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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