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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랫감이 많이 쌓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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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_image 작성자 너브리 이름으로 검색 댓글 1건 조회 1,748회 작성일 22-02-28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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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랫감이 많이 쌓여있다.

이럴 줄 알았지만 쓰레기는 좀 버리지.. 

오늘이.. 28일이니까 집을 비운지 이주일만이었다.

지저분해지긴 했지만 공간의 느낌은 그대로 였다.

커튼을 대강 묶어 둔 모양도 

책을 정리해 둔 순서도 그대로였다.

딱 한 권만 앞니 빠진 9살처럼 비어있었다. 

네가 이따금씩 그린 그림들의 모아 만든 그림책. 

하나 더 그렸나보네. 

묶어내고 나면 보여달라고 해야지. 

평온하게 눈 감은 페이지를 펴고선 

그대로 눈을 감고 앉아 있던 너는 

내가 뭐하냐고 물으면 꼭 3초정도 

그 순간을 즐기다 대답을 하곤 했다. 

모두 평온하게 눈 감은 얼굴 그림이라 나는 무슨 의미인지 알수 없었다.  

너의 눈꺼풀 아래에는 다른 세상이 펼쳐져 있던 걸까.

나는 그 얇은 막을 넘어가지 못해 

현실을 방석삼아 앉아서 너를 기다려야 했다.  

내가 넘어갈 수 없는 그곳에는 뭐가 있었으려나.

네가 머무는 세상은 잘 모르겠지만 나는 너와 나의 현실이 닿아있는

이 방에서 만나는 너만으로도 만족해.

그래. 여기 벗어놓은 외투며 양말 좀 봐.

이 방은 정말 너 그 자체인데 너만 쏙 빠져있네.

다섯시 반. 아마 산책갔나보네.

네가 어서 돌아왔으면 좋겠다. 

 

------


2월 15일 

네가 집을 떠난지 3일째

계획을 이행할 때가 되었다.

집안 곳곳을 사진으로 남겨두었다.


2월 16일 

집에 작업 환경을 만들어뒀다. 


2월 17일

비닐을 깔았다. 


2월 18일 

포획. 


2월 21일

미각을 빼앗음.


2월 22일 

청각을 빼앗음.

 

2월 23일

시각을 빼앗음.


2월 25일

처리. 


내 즐거운 일탈이 끝났다. 

사진은 헨젤과 그레텔의 과자 조각과 같다. 

모든 것이 이전과 같은 모습으로 돌아갔다.

빨래는 마법같은 흔적이다. 

쌓여있는 빨래는 착실히 일상을 재생산한 것 같은 믿음을 준다. 

빨래거리를 늘어놓는다.


2월 27일

그림을 그렸다.  


2월 28일

다섯시. 

쌓여있는 빨래를 보고 숨을 들이마신다. 

일상으로 돌아온다.  

이제 산책을 다녀와 볼까.

나는 모든 것이 무덤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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