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 > 서울 밤의 글쓰기 모임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    0
   

서울 밤의 글쓰기 모임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no_profile 준준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174회 작성일 21-11-29 23:14

본문

별 생각 없이 치과를 예약했다. 예약할 땐 아무 생각이 안 들었는데, 막상 병원에 들어가니 긴장했다. 사랑니를 뽑는 모습을 잠시 상상해보니 소름이 돋았다.

 그런데 이게 웬걸. 순식간에 끝났다. 의사 선생님은 마치 담배갑에서 담배를 꺼내는 속도와 난이도로 내 사랑니를 뽑아버렸다. 헛웃음이 나왔다. 이렇게 순식간일 줄이야. 처방전을 받을 때까지도 나는 알 수 없는 헛웃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 간호사가 내 입속 깊숙하게 쑤셔넣은 거즈에서는 피 한방울도 흐르지 않았다. 이건 분명 ‘발치’였는데. 평화롭다 못해 권태로운 발치였다.

 2호선을 타고 집에 가는 길에 문득 서러워졌다. 아니, 25년이라는 세월동안 내 몸이 열심히 만든 이빨인데, 생판 모르는 60대 남성과 20대 여성이 힘을 합쳐, 단 돈 3만원에 내 이빨을 1분 안에 뽑아버렸다는 게 억울했다.

 그런데 뭐, 결국 모든 게 이런 건가 싶다. 40년을 근속하고 은퇴한 할아버지의 은퇴식 다음날을 상상해본다. 시발. 40년 근속이고 나발이고 그런 거 없을 거다. 남들 다 일하고 있을 10시 정도에 부스스하게 일어나 등을 벅벅 긁으며 물이 든 유리잔을 들고 소파로 향할 것이다. 그리고 이내 소파에 털썩 주저 앉아 ‘시간 참 빠르군’ 할 게다.

 소파 뒤에 걸린 액자 속 가족 사진에는 웃고 있는 가족들의 모습이 담겨있을 거다. 이미 오래 전에 자리를 잡아 집을 나간 아들과 딸의 빈 방이 보일 것이다.

 씨발. 끝이란 건 정말 권태로운 찰나일지도 모른다.

추천1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Total 173건 12 페이지
서울 밤의 글쓰기 모임 목록
번호 제목 글쓴이 조회 추천 날짜
게시물이 없습니다.
게시물 검색

회원로그인

설문조사

당신의 MBTI 앞자리는??

접속자집계

오늘
762
어제
249
최대
9,041
전체
637,075

그누보드5
Copyright © seoulpirates.com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