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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름발이와 위스키 (이번주 주제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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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_image 작성자 지지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1건 조회 1,953회 작성일 22-01-17 2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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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가 피어오른다. 방금 뭐가 지나간거지, 생각할 새도 없이 나의 차 앞으로 나무 한그루가 달려들었던 것이다. 아마 작은 너구리같은 동물이었겠지. 


무릎이 아프다. 운전석이 좁아질만큼 찌그러졌나. 찌그러진 본네트 위로 올라가는 연기가 심상치 않다. 곧 불이 날지도 몰라. 잠시 쉴 시간을 주질 않는군. 차 문을 열고 데굴, 눈이 쌓인 땅 위로 굴러 내렸다. 10점 만점! 체육시간 늘 빵점을 맞았던 앞구르기였는데, 이번 구르기는 제법 그럴듯하지 않은가? 야호! 야호! 어린 내가 손뼉을 치며 차 주변을 맴돈다.


 방금 뭐가 지나간거였지. 돌아본 그 곳엔 너구리도, 족제비도 아니라 한 사람이 누워있었다. 아니 왜, 왜 저 여자는 혼자 이 산속을 걷고 있었나. 119를 불러야겠어. 주머니에서 꺼낸 핸드폰은 액정이 박살나있고 절반은 피투성이었다. 와 이건 침수폰이잖아, AS는 글렀군. 


 가로등 하나 없는 산길은 내 눈치를 보지도 않는지 일초가 다르게 해가 저물고, 눈발도 거세지고 있다. 이 다리로 산을 내려갈 수도 없고. 어차피 두 시간이 한계일거야. 나는 차에 있던 위스키 한병을 꺼냈다. 박살난 무릎으로 절뚝 절뚝, 절름발이가 된 나는 누워 있는 그녀에게 걸어가 옆에 앉았다. 이거 블랙라벨이에요, 크리스토퍼 히친스가 무덤에 같이 넣어달라고 했대요.


 눈이 녹아들어가는 위스키는 야속하게도, 맛이 좋았다. 불타는 자동차가 아른거리는게 꼭 모닥불 같았다. 한 병을 비운 나는 얼굴 모르는 그녀 옆에 나란히 누워, 머리를 살짝 들고 팔베개를 해주었다. 빈 위스키 병은 던져버렸다. 어차피 모든 것은 눈 속에 묻혀 사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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