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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밤의 글쓰기 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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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_image 작성자 no_profile 신생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694회 작성일 22-02-15 1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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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참여 글을 가져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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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어쩌면 그림자일지 모르겠습니다. 

투명한 듯 하면서도 시커면 속내를 감추고 다니는 사악한 부류들이지요.

하지만 우리들은 서로가 그림자라는 사실을 암암리에 모두가 알기에

불편한 저들의 깊은 뜻을 굳이 파헤치지는 않아요.

그들은 대개

내가 생각한대로 움직이며,

내가 생각한대로 느끼고,

내가 생각한대로 생각합니다.

물론 나도 그들에게는 단지 하나의 쉬운 표적에 불과하겠지만

모두가 약자일 때만큼 치열한 경쟁이 또 없거든요.

그러니 여기서는 하나같이 신경을 곤두세우곤 

예민하고 감정적으로 행동해야할껍니다.

다른 그림자에게 잡아먹혀 

남들이 조금 더 짙어지게끔 도와주는 물감의 역할로서 생을 마감하고 싶은게 아니라면 말이지요.

조금 뚱딴지같이 들릴 순 있겠지만, 

사실 아직까지는 누가 다른 누군가에게 잡아먹힌 일은 없었습니다.

그래도 조심해야합니다.

그들의 시뻘겋게 충혈된 두 눈은 여전히 초점을 잃은 채로 공포스런 언어들을 외치고 있으니까요.


 그러나 이런 우리들이라도 가끔씩은 힘을 합쳐야 할 때가 있습니다. 

볕도 잘 닿지 않는 스산한 언덕 너머라 존재마저 옅어질 때가 있기 때문이지요.

주로 밤이라 불리는 이 시간대는 아무리 공격적인 자라도 무력함에 의지를 잃어버리기 마련입니다.

밤이 오기 전에는 서로가 서로의 먹이가 되지 않기 위해,

더 천박한 하층민이 되지 않기 위해,

경계하며 시간을 허비하곤 하지만

밤의 시간이 도래하면 그런 하찮은 행동은 더 이상 아무런 의미를 가지지 못합니다.

모두를 없앨 수 있는 절대 강자가 등장하기 때문이죠.

덕분에 우리는 주로 바위나 나무 밑에서 벌벌 떨며 

겁에 질린 몸뚱아리를 숨겨놓는 방법을 택합니다.


 그렇게 살아가는 것에 적응할 때 즈음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다른 이들은 절대로 해보지 않았을 법한 생각 말입니다.

조금은 무모하게도 저는 그 절대 강자를 없애버리고 싶었습니다.

결코 밤이 오지 않는 낮의 세계를 건설해내려 

서툰 발걸음을 힘겹게 내딛을 준비를 마친 바로 그 순간이었죠.

이런 약자들만 존재하는,

그렇기 때문에 강자를 가리는 것이 아닌 더 약한 약자를 가려내는 이 세상에서,

처음으로 강자가 되기로 결심한 것입니다.

혼자 하기에는 버거울 것 같은 느낌이 들었지만

그렇다고 남들에게 말을 할 수는 없지요.

저를 손가락질하다 못해 

거대한 입으로 한 번에 삼켜버릴 게 뻔하잖아요.


 여정이 시작된 지 영겁의 세월이 지난 지금, 

저는 지구의 공전을 막아낼 만큼 크게 성장해 있습니다.

이제 막 제 계획의 마지막 단계를 실현하기 직전에 멈춰 서 있죠.

수많은 현실의 장애물과 싸웠고,

비난과 손가락질을 이겨냈으며,

혼자만의 고독한 성장을 이룩해 낸,

그 길고 긴 과정들을 찰나의 순간으로나마 교감한 다음

큰 숨을 들이켜고 

마침내 손가락을 튕겨 모든 것을 멈춰 세웠습니다. 


 그러나 그 후로 더 이상

빛이 드는 곳은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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