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한) 오후 세 시에 일어났다.
작성일 22-01-24 2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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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정한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조회 1,050회 댓글 0건본문
입시를 전부 마친 10월 31일, 그동안의 피로를 모두 풀기 위해 낯선 술집에 들어섰다. 친구가 한 번 추천해줬던것도 같은데.. 나의 조숙한 외모 덕분에 고등학생인데도 성인 여부를 묻지도 않더라.
가볍게 진토닉을 시켰다. 익숙하고 무난한 술이라고 생각했기에.
한 잔만 마셔도 취기가 돌았다. 나는 소문난 알콜 쓰레기이다.
그렇지만 내 간의 해독능력은 자유와 해방감이라는 훌륭한 서포터를 두었기에, 더 맛있는 술을 시키려 했다.
그 때, 낯선 술집의 낯선 소녀가 나에게 말을 건넸다.
"여기, 말리부 밀크가 정말 맛있어요. 술잔 위에 휘핑크림을 얹어주는데, 어릴 때 솜사탕을 손에 쥔 것 처럼 아름다워요."
조금은 당황했지만, 음식 비주얼에 환장하는 나는 말리부 밀크를 한 잔, 아니 기분이다. 그 소녀의 술까지 내가 사기로 했다.
그 소녀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번아웃이 심하게 온 얘기, 엄마마저 나를 신뢰하지 않았을 때, 구토가 나올 정도로 싫증이 나는 내 게으름까지. 이런 얘기는 어디서도 하지 않았다.
그 소녀는 내 손을 두 손으로 포개고, 세상 천사같은 모습으로 나를 위로해주었다. 정말 천사같았다. 세상에 오로지 내 편인 존재가 생긴게 처음이었다.
수만번도 넘게 셔터를 누른 내 손을 그 소녀에게 얹은 채 주저앉아 엉엉 울었다.
나 너무 힘들었다고, 다시는 그런 감정을 겪기 싫다고.
정신을 차려보니 오후 세 시였다. 낯선 천장이었다.
아마 그 소녀의 집이려나, 방문 너머로 소녀의 모습이 얼핏 보인다.
그 소녀는 흰 티셔츠에 분홍색 줄무늬 앞치마를 맨 모습이었다.
하얀 피부와 작고 귀여운 발이 인상적이었다.
따듯한 커피와 바게트를 내어주며 며칠씩이나 쉬고 가도 된다는 다정한 말을 건네받았다.
오후 세 시의 포근한 햇살을 받으며 나에게 다시 일상을 쥐어주겠다던 그 소녀의 얼굴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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