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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빨래감이 많이 쌓여있다.

    작성일 22-02-28 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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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우잔 이름으로 검색 조회 654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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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빨래감이 많이 쌓여있다.

    진경은 이 빨래를 언제 다하나 싶다가도 빨래를 하면서 생각을 정리할 시간을 가지게 된 것에 안도했다.

    아버지가 위독하다

    그 연락을 받은 건 이틀전 오빠에게서였다.

    사실 아버지는 아프지 않았던 적이 아팠던 날들보다 더 짧다.

    진경은 알 수 없는 감정에 휩싸인다. 어쩌면 수많은 밤에 스쳐간 소원으로 아버지가 돌아가셨더라면이라고 상상했던, 베개를 울음으로 물들이던 시절을 회상했다.

    최근에 아버지는 수술도 안정적으로 잘 끝냈고, 안정기에 접어든 모습이였다.

    다만 안정기가 없던 건 가족들의 지갑이었다. 진경은 밤낮으로 일하기 바빴고, 오빠, 엄마 모두 마찬가지였다. 수술비, 입원비는 공짜로 생기지 않는다.

    일에 지쳐있다 더 이상 못버틸것같은 날이 오면 일요일이다. 그날 밀렸던 빨래, 청소를 한다. 진경은 세탁기에 빨래감을 집어 넣으면서 아버지가 드디어 돌아가신다는 생각을 감히 해본다. 드디어.. 드디어.. 이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는건가?

    벗어나면 평생을 생각했던 그 굴레에서 벗어나면 진경은 행복해질까?

    그 굴레라는 게 어쩌면 아버지 존재 자체라는 생각을 해본다. 돌아가셔도 계속 진경의 마음에 존재할 아버지는 진경을 계속 괴롭힐거다. 드디어라는 생각을 하게 된 진경의 마음에 죄책감으로 계속 남아있을 것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진경은 최선을 다했는데 고작 이런 마음 먹었다고 그렇게 진경을 평생 괴롭힐 아버지가 너무 밉다.

    문득 아주 문득 아버지가 덜아팠을 때 손톱 기를 새도 없이, 진경의 손톱을 잘라주던 아버지가 생각난다.

    진경은 손톱을 봤다. 자를 때가 되었던가 벌써.

    진경은 신문지를 바닥에 깔고 손톱깎이로 손톱을 차근차근 왼쪽부터 자른다.

    잘려나가는 손톱을 보며 아버지가 또 떠오른다. 그래 잘려나가는 손톱처럼 죄책감도 잘라버리며 살면되지. 나는 계속 살아갈거니까.

    진경은 모든 것이 무덤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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