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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밤의 글쓰기 모임

    작성일 21-11-29 2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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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no_profile 준준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조회 877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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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별 생각 없이 치과를 예약했다. 예약할 땐 아무 생각이 안 들었는데, 막상 병원에 들어가니 긴장했다. 사랑니를 뽑는 모습을 잠시 상상해보니 소름이 돋았다.

     그런데 이게 웬걸. 순식간에 끝났다. 의사 선생님은 마치 담배갑에서 담배를 꺼내는 속도와 난이도로 내 사랑니를 뽑아버렸다. 헛웃음이 나왔다. 이렇게 순식간일 줄이야. 처방전을 받을 때까지도 나는 알 수 없는 헛웃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 간호사가 내 입속 깊숙하게 쑤셔넣은 거즈에서는 피 한방울도 흐르지 않았다. 이건 분명 ‘발치’였는데. 평화롭다 못해 권태로운 발치였다.

     2호선을 타고 집에 가는 길에 문득 서러워졌다. 아니, 25년이라는 세월동안 내 몸이 열심히 만든 이빨인데, 생판 모르는 60대 남성과 20대 여성이 힘을 합쳐, 단 돈 3만원에 내 이빨을 1분 안에 뽑아버렸다는 게 억울했다.

     그런데 뭐, 결국 모든 게 이런 건가 싶다. 40년을 근속하고 은퇴한 할아버지의 은퇴식 다음날을 상상해본다. 시발. 40년 근속이고 나발이고 그런 거 없을 거다. 남들 다 일하고 있을 10시 정도에 부스스하게 일어나 등을 벅벅 긁으며 물이 든 유리잔을 들고 소파로 향할 것이다. 그리고 이내 소파에 털썩 주저 앉아 ‘시간 참 빠르군’ 할 게다.

     소파 뒤에 걸린 액자 속 가족 사진에는 웃고 있는 가족들의 모습이 담겨있을 거다. 이미 오래 전에 자리를 잡아 집을 나간 아들과 딸의 빈 방이 보일 것이다.

     씨발. 끝이란 건 정말 권태로운 찰나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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