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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김금희 - 조중균의 세계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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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_image 작성자 지지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786회 작성일 20-05-26 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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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금희 소설 (6)


4.



 해란 씨는 그사이 다리를 다쳐 목발에 의지해야 하는 신세가 되었다. 집에서 반찬을 하다가 칼이 발등으로 떨어져 내렸다고 했다. 회사는 5층 건물이었고 심지어 엘리베이터도 없었다. 해란 씨는 땀을 뻘뻘 흘리며 하루 내려와 먹더니 다음부터는 점심시간에 사무실을 지켰다. 이번 기회에 다이어트를 좀 하겠다고 했다. 점심을 먹고 돌아와 보면 해란 씨와 조중균 씨가 무언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해란 씨는 자기가 원고 교정을 제대로 보지 않아서 조중균 씨 일이 늘었다고 미안해했다. 그래서 조중균 씨가 교정을 보면 그 교정지를 다시 읽으면서 자기가 무얼 놓쳤나 공부하곤 했다. 조중균 씨는 다른 회사 사람들과는 거리가 분명했지만 해란 씨에게는 그러지 않았다. 훌륭한 사수와 후임처럼, 선배와 후배처럼, 때로는 오누이처럼 점심시간을 보냈다.


 해란 씨는 아예 굶는 건 안 되겠는지 간식을 싸오기 시작했다. 오븐 없이 직접 구웠다는 빵이나 소시지, 과자 같은 것이었다. 오늘은 어디서 났는지 떡을 싸왔고 사람들이 점심을 먹고 사무실로 돌아오자 하나씩 먹으라고 권했다. 부장까지 그러면 어디 한번 맛볼까, 하며 탁자로 모였다. 그리고 놀랍게도 파티션 뒤에서 조중균 씨가 일어나 중앙의 탁자로 왔다.


 “모싯잎떡 이거 비싸다고, 인절미랑은 다르다고. 우리 막내가 돈 썼구먼. 해란 씨 다리는 어떤가. 칼날이 아니라 칼등이었으니 천만다행이지, 아니었으면 수습도 못 마쳤을 것 아니야. 다리 한쪽 못 쓰는 닭은 어떻게 되나? 치킨 런 할 수 있나? 바로 잡혀서 닭튀김이지. 회사원들은 아픈 것도 죄야. 조중균 씨도 잘 먹으라고, 오탈자만 쪼지 말고 모이도 좀 쪼아 먹어. 병든 닭은 어떻게 되나? 치킨 런 할 수 있나? 바로 잡혀서 닭튀김이지.”


 말끝에 떡을 입에 넣던 부장이 무언가 이상하다는 듯이 인상을 찌푸렸다. 해란 씨가 잠깐 자리를 뜬 사이, 서 대리가 먹지 마요, 상했어, 했다. 그러고 보니 다들 젓가락으로 들고만 있을 뿐 먹고 있는 사람은 조중균 씨뿐이었다. 나는 탁자에서 좀 떨어져 있다가 떡을 베어 물었다. 아주 상한 건 아니지만 떡에서는 쉰내 같은 것이 났다. “그냥 냉장고 냄새 아닌가?” “아니야, 쉬었어, 그냥 맛있다고 하고 알아서들 처리해요. 성의 있게 가져왔는데.” 서 대리가 말했다. 모두들 떡을 내려놓는데 조중균 씨 혼자만 계속 먹고 있었다.


 “조중균 씨 먹지 마, 기초 체력 없는 사람이 갈락 말락 하는 음식 먹다가는 아주 골로 가네. 봐야 할 원고가 원투쓰리 기다리고 있는데 어쩌려고 그러나?”


 “괜찮습니다. 아주 간 건 아니에요.”


 “아주 간 게 아니라니. 아주 갔어, 나이가 몇 개인데 그것도 구분 못 해? 그리고 그 교수가 책 나오기를 아주 학수고대하네. 나이가 칠십인데 책 기다리다가 다 죽게 생겼어. 살살 보고 그냥 넘겨, 저자가 고칠 게 없다는데 뭐하느라 붙들고 있느냔 말이지. 어? 이 사람, 그만 먹어.”



 부장이 떡을 싼 비닐을 와락 잡았다.



 “아주는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해란 씨가 사무실로 돌아오자 직원들은 “해란 씨 잘 먹었어.” 하면서 젓가락을 놓고 사라졌다. 해란 씨는 비닐봉지를 움켜잡고 먹지 말라고 하는 부장과, 떡을 오물거리면서도 여전히 떡을 내놓으라고 하는 조중균 씨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원, 쉰 떡에 욕심은. 하여튼 원고 빨리 보게.”



 부장이 자리를 뜨고 조중균 씨는 비닐봉지를 펼쳐서 남은 떡을 집었다. 그리고 마치 유령처럼 씹는 소리도 거의 내지 않고 천천히 먹었다. 점심시간이 끝날 때까지 조중균 씨는 그렇게 조용히 먹고 고요히 포만감을 느꼈다.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66579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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