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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김금희 - 조중균의 세계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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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_image 작성자 지지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2,435회 작성일 20-05-26 0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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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금희 소설 (2)


 해란 씨 말을 들어서인지 그날부터 회사 풍경은 조중균 씨를 중심으로 흘러갔다. 일단 조중균 씨는 들릴락 말락 한 목소리로 인사하며 사무실 문을 열었다. 인사는 우리를 향했지만 너무 작은 소리라서 누가 슬리퍼 신은 발이라도 움직이면 묻혀버렸다. 머리를 숙이기는 했지만 누구를 향하는지 각도가 항상 애매했다. 인사를 할 줄 모르는군, 나는 생각했다. 인사한 효과가 있으려면 이름을 딱 붙여야 한다. 나? 그래, 너, 바로 너한테 나, 인사했어, 분명히 했다, 잊지 마, 확인하는 것이다. 직장에서는 사소한 인사도 병기이고 기술인데 저 나이 되도록 사회생활 헛했군, 헛했어. 비록 수습사원이지만 그런 조중균 씨를 보니 어깨가 펴지며 어딘가 자신감이 붙었다.


 조중균 씨 자리에는 거의 컴퓨터 크기에 버금가는 국어사전이 있었고 그 사전의 한 대목을 펼쳐 읽는 것으로 업무를 시작했다. 원고가 앞에 없어도 그러는 걸 보면 그냥 펼쳐서 읽는 것이었다. 듣기로는 아주 오랫동안 사전 만드는 회사에서 일한 걸로 아는데 사전을 또 읽다니, 기괴한 취미였다.


 조중균 씨는 소리에 민감했다. 헛기침을 하는 버릇이 있는 부장이 헤어억, 하고 가래를 돋울 때마다 조중균 씨는 파티션 뒤에서 소스라치게 놀랐다. 서 대리의 뜬금없는 웃음이나 노래, 시 낭송 등도 그를 놀라게 하는 소리였다. 특히 서 대리가 자기 전공을 십분 살려 프랑스 시나 샹송을 혼잣말 아닌 혼잣말로 읊을 때면 거의 공포에 휩싸인 얼굴로 그 시간이 빨리 지나가기를 기다리곤 했다. 그래서 조중균 씨는 원고를 볼 때마다 귀마개를 사용했다. 모두 의무처럼 웃어주어야 하는 부장의 농담도, “커피 한잔 드릴까요?” 하는 디자이너의 친절도, “식사들 합시다” 하는 과장의 제안도 모두 조중균 씨에게 해당하지 않은 건 단순히 귀마개 때문일지도 몰랐다.


 조중균 씨가 회사 사람들 사이에서 외톨이인 것은 사실이었지만 모든 인간관계가 다 그런 것 같지는 않았다. 업무 시간에도 휴대전화는 자주 울렸고 그러면 조중균 씨는 복도 계단에 서서 소곤소곤 다정하게 통화하곤 했다. 달래는 것 같기도, 위로하는 것 같기도, 무언가를 약속하는 것 같기도 한 목소리였다. 애인인가 했는데 언젠가 전화를 끊으며 “형수, 오늘은 술 그만 먹고,” 해서 애인은 아니구나 싶었다. 가족 중에 알코올에 의존하는 형수님이 있는지, 친구 이름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당부의 말조차도 아주 다정했다. 통화를 마치고 나면 조중균 씨는 담배를―금연 빌딩이니까 불은 붙이지 않고―떨어뜨릴 듯 말 듯, 떨어뜨릴 듯 말 듯 물고 생각에 잠기다가 자리로 돌아오곤 했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생각에서 책상으로 옮겨오는 그 잠깐이 조중균 씨가 가장 생기 있어 보이는 때였다.



“언니, 그분 시를 써요.”


 며칠 뒤 점심 산책을 하는데 해란 씨가 다시 말했다. 시를 쓴다고? 그런 걸 어떻게 알지?


“아, 해란 씨 그분이랑 친해졌구나.”


“아니요, 언니, 아침에 가끔 사무실 청소를 하는데요. 구겨진 종이들이 떨어져 있어요. 펼쳐보면 시가 쓰여 있고요.”


 아침에 늘 일찍 오더니 청소도 하는구나. 그런 거 소용없는데. 그런 성실성을 높이 사주던 낭만적인 상사들은 이미 나이를 먹어 은퇴하고 요즘 상사들은 그런 것, 바지런한 청소 아줌마를 고용함으로써 해결할 수 있는 그런 영역 말고 자신에게 절실하게 필요한 부분을 시원하게 긁어줄 수 있는 직원들을 원한다. 대개는 외국어. 나는 괜히 일찍 나와서 그러지 말고 외국어 강의나 들으라고 하려다가 말았다.


 해란 씨에 따르면 조중균 씨는 매일 똑같은 시를 쓴다고 했다. 〈지나간 세계〉라는 제목이었고 “어머니, 깃대를 들고 거리를 걷는다”로 시작했으며 “우리가 버린 꽃은 말이 없네”로 끝난다는 것이었다. 밑줄을 쳐가며 퇴고도 하는데 언제나 쓴 사람 이름만 고쳐져 있다고도 했다. 어제 쓴 시를 오늘 읽고 쓴 사람 이름만 바꾸어놓는다? “그럼 그 시가 자기가 지은 시가 아니네.” “아니에요, 언니. 며칠 전 물었더니 내가 쓰기는 했지만 내 시는 아닙니다, 하던 걸요?” 자기가 쓴 시이면서 자기 시는 아니라니. 내가 낳기는 했지만 내 딸이 아니라던가, 물건은 훔쳤지만 도둑질은 아니라던가, 하는 식이었다.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66497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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