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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서사 / LITERATURE

[중편소설] 박완서 - 그 가을의 사흘 동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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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_image 작성자 no_profile 백인경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36회 작성일 22-06-22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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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흘전


 


 사흘밖에 남지 않았다.


 창밖은 가을이다. 남쪽으로 난 창으로 햇빛은 하루하루 깊이 안을 넘본다. 창가에 놓인 우단의자는 부드러운 잿빛이다. 그러나 손으로 우단천을 결과 반대방향으로 쓸면 슬쩍 녹두빛이 돈다. 처음엔 짙은 쑥생이었다. 그 의자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 30년 동안을 같은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은 채 하는 일이라곤 햇볕에 자신의 몸을 잿빛으로 바래는 일밖에 없다. 그건 처음부터 거기 있었고 처음부터 쓸모가 없었다.


 53년 봄이니까 아직 동란중이었다. 휴전설이 나돌면서 서울은 단연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인구도 오늘 다르고 내일 다르게 불어나고 있었지만 정부는 아직 환도하기 전이었다. 그때 나는 만 27세의 처녀의 몸으로 겁도 없이 개업하기 위해 단신 서울로 돌아와 마땅한 자리를 물색중이었다. 나의 지나치게 앳된 얼굴 외에는 개업의 로서의 자격은 충분했다. 나는 동란전에 여의전을 나왔고, 동란중엔 부속병원에서 후송되어 온 부상병을 돌본 경험과 피난가서는 부부가 지방에서 개업해서 성업중이다가 남편이 군의관으로 징집당해 쩔쩔매고 있는 선배 언니네 병원에 취직했던 경험을 가지고 있었다. 지금처럼 전문의 제도가 확립되기 전이었으니까 그만하면 개업의로서의 자격에 부족함이 없었다. 진료과목을 뭘로 할까도 내가 차차 정하기 나름이었다.


 환도하기 전이라 개업할 만한 자리는 시내 중심가에도 수두룩했다. 그러나 나는 좀더 분수를 알고 앞을 내다봐야 했다. 곧 있을 정부 환도와 함께 치솟을 집세와 학위를 가진 이름난 전문의들한테 밀려난 전망이 뚜렷한 자리는 처음부터 피하는 게 수였다.


 나는 우선 변두리의 어수룩한 주택가에 파고들 궁리를 하고 변두리로만 돌다가 마음에 든 게 지금 있는 경성상회 이층 자리였다. 그때만 해도 이곳은 서울의 동쪽 관문이어서 철길 하나만 건너면 기름내가 코를 찌르는 양주군 땅이었다. 한문으로 <京城商會>라는 구식이름의 간판이 붙은 농기구 가게는 그 이름과는 딴판으로 그 둘레의 풍경과 걸맞게 매우 촌스러운 것이었다. 그러나 날이 새기 전에 집 떠나서 아침 일찍 나무장을 보러 우마차 끌고 들어오는 양주땅 사람들에게 서울 다 왔다는 안도감을 주기에 충분한, 덜 세련됐지만 어딘지 정이 있는 이름이기도 했다.


 그 동네 복덕방 영감이 그 경성상회 2층이 나와 있다고 보여줄 때 2층에는 경성사진관이라는 간판이 달려 있었다. 세들어 있던 사진사가 동란중 행방불명이 되고 나서 쭉 비어있었다는 사진관 속은 쓸 만한 것은 다 도둑맞고 이젠 동네 아이들의 놀이터가 돼 난장판이었다. 사진관으로 쓰던 곳과 자취방으로 쓰던 곳 사이의 칸막이와 문짝은 떨어져서 바닥에 나동그라져 있었고, 암실을 만들었던 검은 포장은 갈갈이 찢겨져 걸레가 되어 있었고, 계단으로 난 문짝은 숫제 없어진 채였고 유리창도 성한 게 하나 없었다. 이런 황폐한 난장판 속에서 발견한 호사스러운 우단의자는 마치 거센 야만족에게 볼모로 잡혀 온 문약한 나라의 왕자님처럼 이물스럽고도 귀골스러워 보였다.


 나중에 느낀 거지만 그 우단의자는 그런 난장판이 아니더라도 달리 어디 어울릴 데가 있을 성싶지 않을 만큼 눈에 거슬리게 호화스러운 것이었다. 그건 사람이 앉아서 쉬거나 딴 가구와 어울리기위한 의자가 아니라 순전히 사진을 찍기 위한 의자였다. 사진관에 가서 찍은 구식사진을 보면 한 사람은 의자에 앉고 한 사람은 옆에 선다든가, 독사진의 경우, 빈 의자의 등받이에 살짝 손만 얹고 뻣뻣이 서서 찍은 게 흔하다. 또 귀한 첫아들 백일 사진을 위해서도 벌거벗고 혼자 기대 앉을 수 있는 편하고 불품있는 의자가 필요했을 것이다. 그 우단 의자는 그런 쓸모를 위해 특별히 주문한 것인듯 드높은 등받이를 두른 나무장식에는 봉황새가 음각돼 있고, 양쪽 팔걸이 나무는 용트림을 하고 있는 터무니없이 호사스러운 것이었다. 나는 우두망찰을 해서 말없이 빈집의 혼잡의 한가운데에 서 있었다.


 

 나를 안내한 복덕방 영감은 나의 말없음을 그 자리가 마음에 들어하고 있는 걸로 짐작했는지 집주인하고 집세랑 내부시설에 드는 비용문제를 나한테 유리하도록 타협을 봐다 주마고 호기있게 장담하면서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그때나 이때나 집주인 황씨는 경성상회 주인이기도 했다. 혼자 남겨진 나는 집 보다가 문득 어른의 옷을 입어 보고 싶어 가슴 울렁거리는 어릴 적 같은 호기심으로 그 의자에 살짝 걸터 앉았다. 그때도 그 의자는 남으로 난 창가에 놓여 있었다.


 지금은 아파트 단지로 변한 길 건너 동네가 그 때는 농업학교였는데 미군부대에서 쓰고 있었다. 실습원과 이어진 넓은 운동장엔 무수한 퀸셋이 버섯처럼 돋아나 있었고, 정문엔 헬멧을 쓴 미군헌병이 지키고 서 있었다. 처음 들어설 때부터 이 동네는 한눈에 빈촌이었는데도 뭔가 될 듯 됫 듯한 느낌이 들었던 것은 바로 그 미군부대 때문이었다. 그 일대의 궁상은 어딘지 모르게 순수하지 못해보였다. 야릇한 화냥기 같은 걸로 오염돼 있었다.


 나는 내가 원치 않는 상념에 사로잡히기를 거부하는 몸짓으로 도리머리를 흔들면서 우단의자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갇힌 것처럼 답답한 느낌으로 어쩔줄을 몰라하면서 마룻바닥을 서성거렸다. 마룻바닥도 비명처럼 삐그덕댔다. 그러다가 무심히 바닥에 흩어져 짓밟힌 사진들을 주워 모으기 시작했다. 단발머리의 여학생이 새침하게 턱에 손을 괴고 찍은 사진도 있고, 잘생긴 애기의 돌사진도 있고, 자식들의 효도로 찍어드렸음직한 순박하게 늙은 양주가 약간 떨어져 앉아 찍은 사진도 있었다. 우표딱지만한 증명사진 속엔 갖가지 얼굴이 한결같이 무표정으로 고정돼 있기도 했다. 당연하게도 그 사진의 얼굴들 중에는 아는 얼굴은 하나도 없었다. 그러나 나는 그 사람들이 누구나 그 사진을 찍었을 당시와 지금과의 사이에 굵은 획을 가지고 있다는 걸로 뭉클한 친화감을 느꼈다. 나에게도 그런 획이 있었다. 6.25, 그건 우리 모두의 공동의 획이었다. 그 획을 통과하면서 각자의 운명은 얼마나 심한 굴절을 겪어야 했던가?


 나는 얼른 뭔가를 떨어버리려는 몸짓으로 허풍스럽게 도리머리를 흔들고 나서 다시 사진 줍기를 시작했다. 그러다가 나는 벌거벗은 남녀의 몸이 복잡하게 꼬이고 얽힌 춘화를 한 장 주워 들었다. 나는 그것을 곧 떨리는 손으로 찢어버리고 뒷걸음질쳐 우단의자에 앉았다. 그러나 그것을 찢어버리는 걸로, 질식한 듯한 노린내, 율동할 때마다 내 얼굴을 빗자루처럼 쓸던 가슴팍의 무성한 털, 동앗줄처럼 서리서리 길고 질기게 내 몸을 감던 유연하고도 힘센 사지, 내 몸의 중심부를 관통하는 날카로운 통증… 이런 것들이 내 몸에 일시에 생생하게 되살아나는 걸 막을 순 없었다.


 강간당한 직후처럼 모든 사물의 의미가 아득하고 몽롱해지는 망연자실 속으로 복닥방 영감은 웃으면서 나타났다. 저 영감은 왜 웃는 걸까? 나는 꼼짝도 못하고 고작 그렇게 생각했다.


 “선상님은 암말 말고 그저 내 하라는 대로만 하시오, 잉? 우리 동네 병원하나 생길 판인데 내 절대로 선상님을 해롭게는 안할 거시니까 잉?”


 영감은 니코틴 냄새 나는 입을 내 귓전에 들이대고 이렇게 속삭였다. 말 끝나마 붙는 잉 소리가 사투리라기보다는 애교 있는 말버릇처럼 듣기 싫지 않았다. 곧 이어 경성상회 황씨가 올라오고 영감은 계약서를 펴들었다. 곧 이어 경성상회 황씨가 올라오고 영감은 계약서를 펴들었다. 나는 그가 계약서를 편하게 쓸 수 있도록 받침으로 핸드백을 내주었다. 영감은 정말 내 편이 되어 보증금도 깎아내리고 월세도 바득바득 깎으면서 이것저것 사진관 자리에 흠을 잡았다. 경성상회 황씨는 왠지 말수가 적은 사람인지, 화가 났는지, 말끝마다 퉁명스럽게 굴면서도 영감의 술수에 말려들고 있었다. 흥정은 어렵지 않게 영감의 뜻대로 되었다. 마지막으로 내부장치 문제도 집주인이 유리창과 문짝과 칸막이까지를 복원시켜 주는 선으로 쉽게 합의를 보았다. 영감은 합의한 사항을 계약서의 빈 자리에 깨알같은 글씨로 조목조목 써 넣었다. 황씨와 나는 그걸 대강대강 읽고 도장을 내놓았다.


 

 계약이 끝나고 구전까지 지불하고 나서야 황씨는 무슨 병고치는 병월을 할 거냐고 물었다. 이제 완전히 내 대변인이 된 것처럼 구는 데 익숙해진 영감이 먼저 나섰다.


 “후뚜루 다 보신다고 안했남. 선상님이 그러셨죠 잉?”


 “아뇨. 산부인과를 하겠어요.”


 나는 우단의자에서 발딱 일어나면서 말했다. 그것은 즉흥적인 결정이 아니었다. 이 동네의 화냥기에서 힌트를 얻고 춘화도가 이끌어낸 악몽 속에서 마침내 결정을 본 거였다. 원치 않는 아기가 뱃속에 있을 때의 고통이 어떻다는 건 그걸 가져본 여자만이 안다. 모든 질병의 고통은 동정자를 끌어모으지만 그 고통만은 비난과 조소를 면치 못한다. 사람을 질병에서 해방시키는 게 인술의 꿈이라면, 여자를 그런 질병 이상의 고독한 고통에서 해방시키는 건 나의 꿈이었다.


 “영업이 안돼서 떠나갈 적에 시설비 때매 옥신각신허지 않게시리 한마디 써 놓으셔요. 집쥔이 책임 못 진다고…”


 나를 얼핏 곁눈질하는 황씨의 얼굴에 경멸이 스치면서 이렇게 복덕방 영감한테 새로운 제안을 했다.


 “이 사람아, 남 개업하는데 불일듯이 번창하라고 덕담은 못 하나마 그게 뭔 소리야? 선상님 섭섭하시게스리. 선상님 이 사람 이렇게 말주변이 없습니다요. 심정은 무던한 사람이니까 이해하시오 잉?”


 “아저씨도 다 아시면서 그래요. 이 동네 부녀자들 애 쑥쑥 잘 낳는 거. 삼신할머니 동티내지 않은 참한 여자가 뭣 때매 부인병원 신세를 진대요? 망측하게스리…”


 “허어 이 사람, 말마디나 해야 할 장소에선 곧잘 꿀먹은 벙어리 노릇을 하다가도 안헐 말은 툭툭 잘 내뱉는다니까. 후뚜루 다 보신다고 내 안했남. 자네가 호미나 낫 팔던 걸 집어치우고 피륙장사를 하겠다면야 문제가 커지겠지만서두 선생님이야 배운 기술이 사람 병 고치는건데 하필 부인병만 고쳐주겠다고 하실까봐서 걱정인감. 내려가세. 구전 받은 걸로 내 술 한잔 살 테니까.”


 영감이 황씨의 등을 밀다시피 해서 데리고 내려갔다. 나는 혼자서 그들의 산부인과에 대한 소박하나마 정상적인 인식을 되씹으며 쓸쓸한 미소를 지었다.


 개업준비는 빠르게 진행했다. 황씨는 약속대로 목수를 들여 문짝을 새로 짜 달고, 칸막이도 해주고, 유리창도 끼워주었다. 나는 칠쟁이와 간판쟁이를 들여 페인트칠도 하고 간판도 해달았다. <동부의원>, 그리고 <진료과목 산부인과>라는 단서도 붙였다. 책상, 의자 소파 따위는 그 무렵의 서울에서는 헌 것을 얼마든지 싸구려로 살 수 있었다. 한강을 두어 번 넘나들면서 필요한 최소한의 의료기구도 갖추었다. 질경, 쓸모가 다른 몇 개의 겸자, 1번서부터 15번까지의 헤걸, 긴 차숟갈 같은 큐렛 등 반짝이는 쇠붙이를 점검하며, 그 차가운 감촉으로 나는 나의 차가운 마음을 가다듬었다. 나는 아직 그 도구들에 숙련되지 않았건만 피할 수 없는 운명과의 만남처럼 이상한 편안감을 맛보았다. 여자가 치부를 얼굴처럼 치켜들 수 있게 꾸며진 진찰대도 들여놓았다. 거기 누워보기 전엔 그건 다만 가장 과학적으로 설계된 편리한 의료기구에 지나지 않지만 일단 거기 누워보면 그게 여자에게 얼마나 치욕적인 박해의 도구라는 걸 알게 된다. 나는 내가 받은 이유 없는 박해를 회상하고 치를 떨었다.


 

 모든 준비는 끝났다. 사진관은 면목을 일신해서 병원으로 변했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남아있는 사진관의 한 잔재가 눈에 자꾸만 거슬리면서 완성감을 방해하고 있었다. 그건 우단의자였다. 황씨가 사진관을 초벌청소할 때도 그 우단의자는 비켜놓았고, 목수가 뜯어낼 때도 그 우단의자는 비켜놓았고, 칠쟁이가 칠을 할 때도 그걸 발판으로라도 이용하기는 커녕 종이를 덮어 페인트가 떨어지지 않도록 보호해 주었다. 나도 그게 아무짝에도 쓸모없다고 생각하면서도 누굴 주거나 버리지 못하고 구반만 하다가 당초에 그걸 발견했던 자리인 남으로 난 창가에 내버려 두었다.


 모든 준비가 끝났는데도 황씨가 예상한 대로 환자는 없었다. 그러나 나는 그닥 초조하지 않았다. 진찰실 분위기에 도저히 어울리잖는 우단의자 때문에 나는 아직도 개업을 할 준비가 덜 된 것처럼 느끼곤 했다. 어느날 시내에 나가서 살림에 필요한 몇가지 취사도구를 사가지고 들어왔더니 손님이 기다리고 있었다. 손님은 남으로 난 창가의 우단의자에 앉아있었다. 손님은 환자가 아니라 나의 아버지였다. 흰 옥양목 두루마기에 끝이 뾰족한 반찍이는 구두를 신으시고 수염을 기르신 신수 좋은 아버지가 편하게 앉아 계시니까 그 요란한 의자까지 느닷없이 기품 있어 보였다. 나는 그 의자를 치우지 않기를 참 잘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버지가 반가운 건 아니었다.


 “어떻게 여길 아셨어요?”


 “이리에 너 있던 병원에 들렀더니 여길 가르쳐 주더구나”


 “아무데나 어련히 잘 있을까 봐 찾아다니고 그러세요? 건강도 안 좋으시다면서…”


 나는 아버지의 건강에 대해 실은 아무것도 아는 게 없다. 오빠들이 막내인 나에게 혼인말을 꺼낼 때마다 아버지가 사셔야 얼마나 더 사시겠느냐고 속 좀 작작 썩여드리고 아버지 생전에 시집가야 한다고 위협하는 소리를 귀가 따갑게 들어왔기 때문에 막연히 아버지가 오래 못 사실 것처럼 여기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잖아도 막내에다가 어머니를 일찍 여의었기 때문에 고아가 될 것 같은 예감은 늘 있어 왔다. 그러나 아버지가 직접 나더러 자기 생전에 시집을 가주길 바라신 적은 없었다. 아버지는 자신을 핑계삼아 자식의 운명을 간섭하실 분이 아니었다.


 “병원자리가 좋구나”


 이번에도 아버지는 내가 이미 벌여놓은 일을 긍정해 주셨다.


 “뭘요, 빈촌이라서요”


 나는 내 속셈을 감추고 이렇게 시침을 떼었다.


 “아픈 사람이야 가난한 동네에 더 많은 거 아니냐. 어렵게 배운 의술로 행여 돈벌이할 생각 말아라. 예로부터 의술은 인술이라 했거늘 어질게 써야 하느니라”


 나는 복받치는 웃음을 참기 위해 어금니를 힘주어 악물었다. 아무도 내 비밀을 눈치채지 못할 것이다. 지난 일에 대해서도, 앞으로 하려는 일에 대해서도 현재 마음속에서 경련치는 고통에 대해서도.


 아버지는 곧 돌아가시려고 했다. 잠깐만 기다리세요. 나는 아버지를 만류했다. 아버지는 나의 만류를 어떻게 받아들이셨는지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으니 애쓰지 말라고 하셨다. 나는 아버지에게 잡수실 것을 대접하기 위해 붙든 게 아니었다. 우단의자에 앉아 계신 아버지의 모습이 하도 보기 좋아서였다. 사람들이 부모나 자식의 모습을 사진 찍어 간직하는 심정을 알 것 같았다. 그때 나는 아버지를 사진 찍어두지는 못했지만 그때의 아버지의 그윽한 시선과 피곤한 듯하면서도 기품 있는 모습은 지금까지도 선명한 모습으로 마음속에 인화되어 있었다.


 

 아버지는 잠깐을 더 앉아 계시다가 소년처럼 수줍어 하시면서 사가지고 오신 선물을 내놓으시고는 그날로 큰오빠네가 있는 대전까지 내려가야 한다고 돌아가셨다. 그후 아버지를 다시 뵌 건 임종의 자리에서였다.


 그날 아버지가 주신 선물은 히포크라테스 선서가 들어있는 액자였다. 나는 아버지가 우단의자에서 의술이 어쩌구 인술이 어쩌구 하실 때 참았던 웃음을 혼자서 마음껏 터뜨렸다. 나는 그 액자를 걸지 않았다. 그날로 그것은 버리자니 아깝고 쓸모는 없는 걸 모아두는 골방 신세가 되었다. 그후 30년 동안 비록 이사는 한번도 안 다녔지만 적어도 대여섯 번은 내부 시설을 크게 바꾸었고, 1년에 두 번씩은 대청소를 했으니 그게 거기 아직도 남아 있을 리는 없다. 그날 아버지가 앉아 계실때를 빼고는 우단의자는 쭉 쓸모없을뿐더러 눈에 거슬렸다. 다른 비품들과 조화되지 못하고 겉돌았고, 수리를 할 때나 대청소를 할 때마다 구박을 받았다. 그럴때마다 나는 그걸 끼고 돌아가 그 자리에 다시 놓곤 했다. 어쩌면 나는 그걸 없애면 대신 히포크라테스 선서라도 걸어야 할것 같아서 그걸 못 없애는지도 몰랐다.


 공교롭게도 내가 처음 받은 환자는 집주인 황씨의 딸이었다. 황씨는 그때까지는 혼자서 살고 있었다. 병원 북쪽 창으론 경성상회 안채인 살림집이 빤이 내려다보였다. 양기와를 인 허름한 ㄱ자집 마당에서 그는 혼자서 쌀도 씻고 빨래도 했다. 그러나 장독대랑 마루나 부엌살림을 보면 큰살림하던 구색을 제법 갖추고 있었다. 난리통에 아내는 식량구하러 친정에 갔다오다 폭사하고 아들 둘은 북으로 끌려가고, 노모는 병들어 죽고, 외동딸은 혼자서 피난간 채 아직 안 돌아왔다고 했다.


 그 딸이 언제 돌아왔는지, 오밤중에 황씨가 왕진을 청하러 왔다. 황씨는 몹시 서둘고 있었고 와들와들 떨고 있었다. 아무리 지척이라곤 하지만 잠옷바람으로 내려가 볼 수는 없어 대강 옷을 주워 입는 동안을 못 참아 일어났다 앉았다 남의 방문을 열었다 닫았다 하면서 안절부절을 못하면서, 떨리는 목소리로는 뭔가를 설명하려고 두서없이 지껄여대고 있었다.


 “선생님, 좀 서둘러 주셔야겠구먼요. 병이 심상치 않아요. 무슨 몹쓸 병인지 배가 퉁퉁 부어갖고 쑤신다고 지접을 못하고 뛰는데 당장 뭔일 당하고 말 것 같구먼요. 선생님이 후뚜루 다 보신단것 틀림없겠죠? 처녀가 부인병원 신세를 졌다면 낭중에 누가 알더라도 우선 우세스러워서…. 망할 년, 애비 혼자 내버려 두고 저만 살겠다고 계집애가 담도 크게 혼자서 피난을 내려가더니 어디서 그런 몹쓸 병을 얻어가지고… 선생님 저 이번에 또 한번 참척을 보면 저도 죽습니다요. 선생님, 선생님이 후뚜루 다 보신단 소리 맞습죠? 처녀가 부인병원 신세지는 걸 누가 알아보세요. 그렇지만 병세가 워낙 급해서…,  선생님, 꼭 그 불쌍한 걸 살려주세요. 또 한번 참척보면 저도 살아 있지 않습니다요”


 그는 잠시도 입을 다물지 않고 횡설수설했다. 나는 경황없이 나한테 매달리면서도, 똥 묻은 동앗줄에 매달린 것처럼 산부인과라는걸 꺼리고 있는 황씨의 그 우스꽝스러운 결벽성을 실컷 우롱해 줄 수 있을 것 같아 뱃속이 근질근질했다. 나는 첫 환자인데도 조금도 당황하지 않았고 여유만만했다. 나는 옷을 다 입고 가운까지 걸치고 손을 소독했다. 가방 속엔 이미 조산에 필요한 기구가 챙겨져 있었다. 황씨가 떨리는 손으로 가방을 받아들고 계단을 곧두박질쳐 내렸다. 안채에선 짐승의 목 따는 소리 같은 처절한 비명이 들려오고 있었다.


 

 안방에 고쟁이 바람의 처녀가 마구 으깨진 입술을 더욱 모질게 악물도 두 손으론 고쟁이 허리를 필사적으로 움켜쥐고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땀에 절은 머리칼이 가닥가닥 엉켜붙은 얼굴에서 튀어 나올 듯이 부릅뜬 눈은 너무 순수하게 고통스럽고 고독해 보여서 사람의 눈 같지도 않았다. 언제 파수 했는지 고쟁이는 이미 펑하게 젖어 있었다. 나는 황씨를 처녀의 머리맡으로 떠다밀고는 고쟁이를 끌어내렸다. 입속이 깔깔하게 말라 아무 말도 안 나왔다. 고쟁이 허리를 빼앗긴 처녀의 두 손이 두어 번 허공을 젓더니 장승처럼 서 있는 황씨의 바짓가랑이에 매달렸다. 처녀의 산도는 아람이 번 밤송이처럼 걷잡을 수 없이 열려있었다.


 황씨가 뭐라고 알아들을 수 없는 외마디 소리를 지르며 주저앉았다. 처녀가 그의 허리를 붙들고 이를 갈더니 맹수처럼 포효했다. 그러나 태아는 두부만 겨우 만출되고 나서 일단 정지했다. 놀랍게도 그 경황중에 태아가 눈을 반짝 떴다. 이미 태아가 아니라 아기였다. 일순 나는 나를 관통하는 경외감에 소스라치면서 한 번만 더 힘을 주라고 힘차게 명령했다. 나는 내 목소리를 처음 듣는 남의 목소리처럼 신선하고 당당하다가 생각했다.


 산모가 다시 한번 포효하는 것과 동시에 나는 아기를 끌어당겼다. 나는 한창나이의 산파처럼 산후처리를 능숙하고도 신속하게 해냈다. 교과서에 나오는 대로의 정상분만인 때문이라기보다는 나 아닌 딴 힘이 나를 조종하는 것처럼 내가 아는 지식이나 경험을 조금도 떠올리지 않고도 나의 조산은 우수했다. 아기는 사내아이였다. 2층으로 돌아온 나는 아침까지 푹 잤다. 창문을 열고 노래를 부르면서 아침밥을 짓고 있는데 황씨가 올라왔다. 하룻밤새 모랄보게 늙고 초라해진 황씨는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눈을 내리깔고 있었다.


 “산모랑 아기랑 별일 없죠?”


 “선생님 뵐 낯이 없구먼요?”


 “이제 아셨죠? 부인병원도 왜 있어야 하는지…”


 “부인병원 무시한 벌을 이렇게 영검하게 받다니요.”


 “벌이라뇨? 손자 보시고서! 녀석이 대단하던데요. 글쎄 얼굴이 반쯤 나왔는데 벌써 눈을 뜨고 쳐다보지 뭐예요. 대장감이에요. 두고보세요”


 나는 괜히 신이 나서 지껄였다. 황씨가 내리깔았던 눈을 치떴다. 동굴처럼 정기없이 움푹 패인 눈이었다.


 “이 망신을 어쩌죠? 선생님, 글쎄 애비를 모른다지 뭡니까. 아무리 당조짐을 해도, 코찡찡이 곰배팔이라도 상관않고 성례를 시켜 주겠대도, 그게 아니라고 자꾸 울기만 하더니 턱하니 한다는 소리가 겁탈을 당했다는 거예요. 겁탈을…, 이름도 성도 모르는 놈한테…”


 황씨는 비탄과 분노로 떨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의 비탄에서 얼핏 정욕의 냄새를 맡은 것처럼 느꼈다. 나는 게울 것처럼 기분이 나빠져서 얼굴을 찡그렸다. 남자에겐 누구나 여자를 겁탈할 수 있는 소지가 있다. 나에겐 이름이나 성보다는 그게 남자라는 게 더 중요했다.


 “세상에 이런 망측한 일도 있습니까? 다 망한 집안에 어쩌다 딸년이 하나 남아 가지고 가문에다 똥칠을 해도 분수가 있지…”


 그의 가문이 얼마나 대단한 가문인지는 몰라도 그는 보이지 않는 가문에 칠한 똥만 알고 그의 딸이 원치 않는 애기를 배고 겪었을 생지옥에 대해선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았다.


 “선생님 도와주세요, 제발”


 그의 비탄에 비굴이 가해지니까 더욱 보기에 추악했다.


 “유감이지만 저는 애기를 도루 뱃속에 넣을 재주가 없는걸요”


 내가 정말 유감인 건 그에게 더 참혹한 선언을 할 수가 없는 거였다.


 “선생님, 저도 그만한 건 알고 있습니다요. 그게 아니라…”


 

 여기서 말끝을 흐린 그의 얼굴에 재기 같은 게 반짝거렸다. 그런 반짝임은 농사꾼처럼 털털하고 우직한 그에게 매우 안 어울려서 보기에 불안했다. 그가 부신 듯 외면하고 손을 부볐다.


 “그게 아니라… 선생님, 선생님만 모른 척해 주신다면 아주 좋은 수가 있습니다요. 선생님만 믿겠어요. 핏덩어리를 엎어 죽이자니 그것도 살자고 나온 인생인데 인두겁 쓰곤 못할 노릇이고…”


 “아저씨, 제발 그 수라는 것부터 말씀해 주실 순 없어요?”


 “네 말씁드리고말굽쇼. 딸년이 그래도 제꼴 창피한 건 알아서 요행 어제 밤중에 돌아와서 아무도 만난 사람이 없다는군요. 그래서 말씀인데 딸년은 아직 안 돌아온 걸로 허고, 어린걸 제 아들로 삼았으면 해서요”


 “아저씨 아들을요?”


 나는 그 기상천외의 발상에 혀를 내둘렀다.


 “네, 업동이가 들어왔다고 한바탕 소동을 피우면 될 것 아니겠어요? 딸년은 뒷방구석에 숨어 있다가 몸 추스른 연후에 나타나면 이러쿵저러쿵 둘러댈 것도 없이 피난갔다 돌아오는 게 될테구요”


 “따님이 동의하던가요?”


 “제깐년이 지금 동의를 허고말고가 어딨어요. 모자 목숨 살려주는 것만도 끔찍허죠”


 “그래도 따님의 애긴걸요.”


 “그년은 제 딸년이고, 그 녀석이 제 손자인 건 어떡허구요?”


 그가 자기 답이 정답인 걸 주장하는 국민학생처럼 대들다가 생각난 듯이 비굴해지면서 다시 손을 부비며 어쩔줄을 몰라했다. 그의 즉흥적이고도 완벽한 음모에 나는 얼마나 달갑잖은 훼방꾼일까? 나는 약간 주눅이 드는 기분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따님만 동의한다면 당장의 망신을 모면하는 방법으로 아주 좋은 생각이네요”


 나는 결국은 동의한 셈이 되고 말았다.


 “아무려면 제가 당장의 망신이나 모면할 생각으로 이런 꾀를 내겠습니까요. 손 끊긴 집안에 손이 생겼으니 우리 집안도 고목나무에 꽃핀 셈이 되는거죠. 아마 업동이가 들어왔다면 동네방네 입가진 사람은 한마디씩 경사났다고 안허는 사람 없을 거구먼요. 딸년은 딸년대로 몇 년 아들을 동생이라고 생각허든, 동생을 아들이라고 생각허든 하여튼 그 핏덩이를 지성껏 기르지 않겠어요. 그러다가 참한 혼처 생기는 대로 시집 가 버리면 그 내막을 누가 알겠어요?”


 그 사내는 순전히 자기의 꾀 하나로, 어젯밤의 악몽을 놀라운 행운으로 돌변시킨 데 도취하고 있는 것 같았다. 얼굴에 화색이 돌면서 운명의 유희를 즐기는 것같은 짜릿한 쾌감이 비늘처럼 번득였다.


 “선생님만 눈 감아주신다면…”


 그는 눈을 내리깔고 그렇게 말했지만 나는 이미 그의 눈이 아까의 절망적인 구멍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만일 눈감아 주지 않겠다면 그가 내 목을 조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사내들이란 쾌감의 완성을 위해선 뭐든지 할 수 있으니까. 그는 음흉해 보이긴 했지만 조금도 폭력적으로 보이지 않았건만도 그렇게 생각하면서 나는 그 일을 눈감아 줄 것을 마지못해 약속했다. 실상 아기를 위해서도 산모를 위해서도 황씨를 위해서도 그 이상의 좋은 방법은 없었다. 나는 어쩌면 너무도 교묘하고 산뜻한 그들의 전화위복에 질투를 내가 있는지도 몰랐다.


 

 황씬느 내 승낙이 떨어지자 수없이 굽신대면서 호주머니를 뒤적이더니 한 다발의 돈을 내놓았다.


 “어젯밤 두 목숨 살려주신 은혜를 어떻게 돈으로 따질 수가 있겠어요? 두고두고 갚아나갈 것이지만서두 우선 성의껏 마련한 것이니까 넣어두셔요”


 그러고는 뺑소니치듯 내려가 버렸다. 나는 그 돈을 그가 내려간 뒤에 세어보았다. 규정상의 정상분만비의 세 곱은 되는 액수였다. 아마 입 다무는 삯까지 포함돼 있음직했다. 다시 한번 그들의 전화위복에 자신도 이해할 수 없는 질투를 느꼈다. 그리고 그 돈에다 국제시장 장사꾼들이 마수걸이한 돈에 하듯이 퉤 침을 뱉았다. 그건 나의 마수걸이였다. 마수걸이 치고도 후한 마수걸이였지만 다시 애기를 받을 생각은 없었다. 나는 처음부터 이 동네를 감도는 화냥기에만 기대를 걸었기 때문에 산부인과 병월을 차리면서도 분만대 같은건 애당초 시설도 안했다. 나는 오로지 이 동네의 화냥기와 야합해서 돈을 벌어볼 작정이었다.


 내가 이 동네에 들어서자마자 받은 예감은 틀림이 없었다. 양공주가 하나 둘 드나들기 시작하면서 영업이 되기 시작하더니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소파수술을 해야 했고 차츰 그 방면에 명수가 되었다. 그 동안 내가 태어나지 못하게 한 아기가 다 살아난다면 큰 초등학교를 하나 더 만들어야 할까? 작은 읍을 하나 더 만들어야 할까? 그러나 나는 그런 부질없는 감상에 잠기는 일조차 거의 없었다. 나에게 줄기차게 이어지는 감상이 하나 있다면 그건 우단의자를 남으로 난 창가에서 치우지 못하는 일이었다. 그 우단의자는 세월과 함께 곱게 늙어갈수록 더욱더 병원 분위기와 안 어울리고 겉돌았다. 들락거리는 간호원마다 그걸 내다버리라고 성화를 했다. 대강의 살림을 간호원에게 맡기다시피 하고 살건만도 그 청만은 못 들어주었다.


 그걸 내다버리려면 히포크라테스 선서가 든 액자를 대신 걸어야 할 것 같은데 그게 없어진 지는 오래 되었다. 하긴 액자도 안 걸고 의자도 없앨 수도 있었다. 그러면 아마 그 의자에다 흰 옥양목 두루마기를 입으시고 뾰족하고 반짝이는 구두를 신으신 신수 좋은 아버지의 환상을 겹쳐 놓고 바라보는 일도 없으리라. 그 의자의 유일한 주인은 그분이었다. 그 의자를 없앨 수 없는 건 의사라기보다는 화냥기와 야합한 의술자가 된 내 모습을 바라보는 그분의 슬픈 얼굴을 함부로 지울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였다. 그건 나에게 있어서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애정의 그루터기 이상의 그 무엇이었다.


 그러저럭 30년 가까운 세월이 한곳에서 같은 일을 되풀이하면서 흘렀다. 그 동안 이 동네도 많이 변했다. 이제 변두리라기보다는 도심권에 가까운 동네가 되었고 물론 양공주도 사라진 지 오래다. 그러나 처음에 나를 잡아당기던 화냥기는 그 후로도 꽤 오래 이어져 내려왔던것 같다.


 농업학교는 정부가 환도하고 나서도 2,3년은 더 미군부대였고, 농업학교가 정상화되고 나서도 딴 큰 미군부대가 멀지 않아서 이 동네의 화냥기는 계속 호황을 누리다가 미군이 대폭 감축되고 나서도 그 뿌리는 쉽게 청산되지 않고 싸구려 윤락가로 이어져 내려왔다. 근래에 주택가 속에서의 윤락행위 단속으로 대개는 흩어졌지만 멀리서도 연줄로 계속 내 단골이 되어 주고 있고, 또 아들 딸 가리지 말고 둘만 낳기 때문에 이 동네 가정 주부들 치고 내 신세 안 진 여편네는 거의 없는 형편이다.


 길 건너 농업학교는 건설회사한테 학교 부지를 팔고 교외로 떠나 아파트단지가 됐다. 그러나 그 새로운 인구밀집지대에서는 어떻게 된 게 하나도 새 단골이 생기지 않았다. 내 단골은 미우나 고우나 경성상회 두편의 퇴락한 구 동네였다. 그 동네의 얌전한 여편네들 사이에서나, 또 시내 곳곳에 점점이 흩어져 제 버릇 개 못 주고 그짓으로 밥먹는 포주들 사이에서나 나는 값싸고 믿을 만한 의사로 소문이 나 있었다. 그도 그럴 밖에 나는 그 동안 단 한 건의 사고도 내지 않았던 것이다. 자주 그럴 필요가 있는 넉넉지 못한 여자일수록 거만한 박사학위나 으리으리 기죽이는 시설보다는 값싸고 믿을 만하다는 실속이 앞서는 건 당연했다. 그러나 여지껏 단 한 건의 사고도 없었다는 건 사실과 약간의 차이가 있었다. 사고의 뒤처리를 신속하고 적절하게 그리고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감쪽같이 했고 또 운수좋게 그게 그대로 적중해서 큰 사고로까지 발전한 적만 없다 뿐이었다.


 

 내 손에는 겸자를 쥐었던 자리와 큐렛을 쥐었던 자리 세 군데가 옹이처럼 뿌리깊은 못이 박혀있다. 웬만한 읍을 구성할 만한 인명을 처치한 흔적이다. 그일이라면 눈감고도 할 수 있을 만큼 이골이 났으면서도 실수는 끊임없이 있어 왔다. 가장 가공할 사고로 치는 자궁천공을 저지른 일만도 열 손가락을 넘게 헤아린다. 문제는 늘 눈감고도 할 수 있다는데 있었다. 실상 그일은 눈이 필요없는 일이었다. 어떤 명의도 생명이 착상한 신비한 오지를 육안으로 볼 순 없다. 눈은 헤걸이나 큐렛 끝에나 달려 있으면 된다. 그러나 큐렛 끝의 눈을 뜨고 있게 하기 위해선 한순간도 그것을 쥔 의사의 넋이 나가 있으면 안된다. 나가 있을 땐 나가 있는 걸 결코 느끼지 못한다.


 마치 잘 익은 꽈리를 따다가 성냥개비로 무심결에 구멍을 내면서 아차할 때 같은 폭하는 느낌이 헤걸 끝에 오면서 나갔던 넋은 돌아온다. 것이 들어앉았을 땐 모르지만 나갔다 들어올 땐 순간적으로 이물처럼 어떤 감촉을 지닌다. 나는 그렇게 들어오는 넋의 냉혹한 감촉 대문에 나의 것이 증오로 되어 있는 것처럼 느끼곤 했다. 그렇다. 나는 증오로써 그 일을 했다. 그일을 실수없이 하기 위해선 내 얼굴 앞에 냄새나는 치부를 얼굴처럼 쳐들고 자빠진 여자와 그 속에 자리잡은 원치 않은 생명에 대한 증오가 잠시도 나를 떠나 있으면 안되었다. 실수를 즉각 만회하는 데도 증오는 있어야 했다. 들어온 넋이 나를 완벽하게 지배하면서 나는 냉정하고 기민하고 정확하게 대처했다. 그렇다고 내 태도가 외견상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안색 하나 안 변하고, 그럴수록 보다 침착하고 깨끗하게 소파를 끝마치고 항생제와 수축제를 주사하고 나서, 환자를 안정시키고 경과를 관찰한다. 자궁이 심한 후굴이어서 소파가 어려었으니까 통증이 좀 있어도 참으라는 둥 둘러댈 말은 얼마든지 있다. 잘 익은 꽈리 뚫어지듯이 맥없이 뚫어질 수도 잇는 자궁이지만 생체는 꽈리하곤 다르다. 자신의 자연치유 능력을 가지고 있다. 여지껏 한번도 천공이 복막염이나 그 밖의 큰 일을 일으킨 일 없이 결과는 감쪽 같았다.


 그러나 그런 일을 한번 치르고 나면 한바탕 몸살 비슷한 증세를 앓는 허약한 구석도 있어서, 그럴 때마다 그 노릇을 다시는 못할 것처럼 정이 떨어지다가도 그래도 55세까진 해야지 하고는 마음을 다시 눙쳐먹곤 했었다. 55세에 특별한 뜻은 없었다. 나도 모르게 공무원이나 은행원의 퇴직연한에서 빌어온 착상인 것 같았다.


 이제 앞으로 사흘만 있으면 나는 만 55세가 되고 공교롭게도 그 날은 이 일대가 도시계획에 걸려 경성상회를 철거해야 하는 마지막 날이기도 했다. 나는 그 동안 번 돈을 착실하게 축적해 놓았기 때문에 노후를 슬슬 해외여행이라도 하면서 윤택하고 유유자적하게 보낼 수 있을 것 같다. 공무원 같은 연한이 있는 것도 아니고, 55세 까지만 해먹겠다고 누구한테 각서를 쓴 것도 아니지만, 더 해먹을 생각은 조금도 없다. 벌써 조용한 주택가에 마당 넓고, 예쁜 집을 마련해서 내부단장까지 다 끝냈으니 들기만 하면 되고, 그밖에도 적지않은 집세가 들어오는 부동산이 또 있고, 막대한 금액의 노후보험 불입도 끝나 이젠 해마다 타먹는 일만 남았다. 증권도 있고 채권도 있다. 내가 이제부터 할 일은 돈을 어떻게 버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그 돈을 다 쓰고 죽느냐다.


 

 그런데도 나는 내가 이 노릇 할 날이 앞으로 사흘밖에 안 남았다는 데 대해서 심한 조바심을 하고 있었다. 내가 이 노릇을 그만두기전에 마지막으로 꼭 해보고 싶은 게 한 가지 있었다. 그건 애기를 받아 보는 일이었다. 내가 개업하고 나서의 첫 손님도 산모였다. 그러고 이날 입때 어쩌면 나는 단 하나의 산 목숨도 받아보지 못했다. 내가 그걸 의식적으로 피하는 사이에 나는 그만 소파의 전문의로만 알려졌던 것이다. 처음에 몇 년 동안만 해도 더러 해산 문의가 있어서 인근의 산원을 소개해준 일도 있었건만 그런 일도 점점 줄어들고 근래엔 아주 없어졌다. 이제 저절로 산모가 글러들어올 가망은 없다.


 그러나 나는 벌써 두어 달 전부터 60일, 50일… 10일, 9일, 8일… 카운트다운까지 해가면서 초조하게 그일을 기다리고 있다. 이제 사흘밖에 남지 않았다. 가망이 없다고 생각할수록 그일이 하고싶어 환장을 할 지경이다. 생각해 보면 얼떨결에 내가 마수걸이로 그 일을 해냈을 때만 해도 지금에다 대면 너무도 미숙한 애송이 의사였다. 그러나 지금 나는 그때의 나를 일생을 정진해도 도달할까말까 한 나, 늘 앞날에만 있는 나, 완성된 나, 이상화된 나처럼 느끼고 있다. 어느새 망령이 난 것처럼 시간까지 이렇게 내 속에서 도착을 일으키고 있다.


 사흘밖에 남지 않았다. 사흘밖에…


 만득이 처가 만삭이 된 걸 본 순간부터 간절히 바라고 바라던 일이 아직 안 일어난 채 내가 그일을 할 수 있는 날은 앞으로 사흘밖에 남지 않았다.


 만득이는 내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받은 황씨의 외손자였다. 황씨는 그날 나한테 눈감아달라고 애걸한대로 그 아기를 업동이가 들어온 걸로 동네방네 소문을 냈다. 처음엔 이름도 없이 누구나 다 업동이, 업동이 하면서 신기해만 하다가 이왕 들어온 업동이 아주 아들 삼아 손을 잇게 하는 게 좋지 않겠느냐고 동네사람들의 중론이 모아졌다. 처음부터 그럴 작정이었던 황씨건만 그제서야 마지못해 그러는 것처럼 늦게 둔 자식이라는 뜻으로 만득이라는 이름을 붙이면서 동네사람들에겐 업동이란 소리를 다시는 입밖에 내지 말아달라고 부탁했다. 업동이가 들어온 지 한 달쯤 있다 혼자 피난 나갔던 딸까지 돌아왔다. 비록 젖까지 먹일 순 없었지만, 딸은 새로 생긴 남동생을 극진히 양육해서 동네의 칭송을 한몸에 받았다. 동생을 다섯 살이나 먹여놓고 나니 노처녀 소리를 들을 나이라, 마침 전실자식 없는 후취자리가 나서서 부랴부랴 시집보내 아들 딸 낳고 잘사니 그만하면 황씨의 각본대로 안된 게 없었다. 황씨의 각본에서 나의 구실은 뭘까? 문득 그런 생각을 하면 이사라도 떠나주고 싶지만 나의 병원은 날로 성업중이었다.


 황씨는 고집세고, 의심많고, 인색한, 그래서 노랭이 황영감이란 별명까지 붙은 괴팍한 노인으로 늙어가고 만득이는 훤칠하고, 씀씀이 좋고, 난봉 잘 피우는 청년으로 성장했다. 그 동안에 동네 사람들은 수없이 갈려서 이제 만득이를 마누라가 노산후덧침으로 죽어서 황영감 혼잣손으로 기른 외아들이란걸 의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나만이 모든 것을 알고 봐서 그런지는 몰라도 만득이에 대한 황영감의 애증의 갈등은 좀 심한 데가 있었다. 일찌거니 바로 잡아 줘야 할 밥투정이나 주전부리 버릇, 버르장머리없는 말씨 등에 대해선 그저 오냐오냐, 따끔한 말 한마디 못하다가도, 어쩌다 백점받은 시험지를 받아 오면 누구 거 보고 썼나 대라고 매를 드는가 하면, 성적이 오른 통지표도 고쳐 썼을 거라고 생트집을 잡아 아이가 울고 집을 나가 며칠씩 안 들어오게 한 일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그의 딸이 친정에 돌아와 몰래 울고불고하다가 돌아가곤 했다. 황영감은 만득이에게서 딸의 피와 딸을 강간한 놈팡이의 피를 따로 따로 갈라서 느낌으로써 자신을 괴롭히는 것같았다. 인심 좋고 건장해 보이던 황씨는 의심 많고 인색하고 우울한 늙은이로 못되게 변해 갔다. 그의 전화위복은 결코 완벽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의 전화위복을 질투했던 나도 이젠 그것을 연민하는 마음이었다.


 

 자기가 감히 생모라는 발설은 하지 않았지만 몰래몰래 후한 용돈을 주는 것으로 누나 이상의 애정 표시를 해온 생모 덕으로 만득이는 어려서부터 낭비벽이 붙었고 군대 갔다와서 취직을 하더니 씀씀이는 더욱 호탕해져 버렸다. 그는 자기 월급이 얼마란 소리보다는 자기 회사의 연간 수출실적이 얼마란 소리 하기를 더 좋아했다. 그는 마치 그 회사의 말단사원이 아니라 대주주처럼 회사의 이익에 대한 신바람을 냈고 그걸로 자기의 씀씀이를 합리화시키려고 했다. 황영감은 이런 만득이를 경멸할 뿐 아니라 도둑놈처럼 경계하면서 마치 육체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도 모르는 것처럼 한푼어치를 떨고 먹지 않고 입지 않고 다만 돈주머니를 불리고 움켜쥐었다. 만득이를 보는 그의 눈에 애정은 이미 없었다. 아마 그의 딸을 겁탈한 놈팡이의 피에 대해서만 생각하기로 작정한 모양이다.


 그렇다고 그의 편견이 만득이에게서 끝나는 게 아니었다. 만득이가 자기 회사 수출실적이 몇십만 달러라고 뽐내면, 흥 그놈의 회사 차관은 얼말걸 하면서 그 갑절도 넘는 수치를 둘러댔다. 그는 신문을 따로 대보지 않고 우리 집에 오는 신문을 가로채다가 샅샅이 읽어서 아는게 많았지만 수출고보다는 차관의 액수에 더 밝았고, 사람들이 잘살아야 하는 까닭에 대해서보다 못살아야 하는 까닭에 대해서 더 소상했고, 양지의 소식보다는 음지의 소식에 더 밝았다. 그는 만득이뿐 아니라 모든 사물을 그늘만 보면서 괴팍하고 스산하게 늙어갔다.


 만득이가 제법 제 밥벌이라도 하게 되자마자 집을 뛰쳐나간건 당연했다. 그일이 황영감에게 충격이 되었는지 아닌지는 아무도 헤아릴 수 없었다. 황영감의 얼굴은 이미 더 불행해질 나위없이 불행해진 뒤였으므로.


 지금부터 두 달 전 만득이는 만삭의 여자를 거느리고 집으로 들어왔다. 황영감은 반기지도 내쫓지도 않았고 딱 한 가지 예식을 올렸느냐고 물어봤다.


 “아버지, 제가 아무리 불효자식이기로소니 아무려면 아버지 안뫼시고 저희끼리 식을 올렸겠어요? 절 그렇게까지 다된 놈 취급하시면 저 정말 서럽습니다. 네, 서럽고말구요”


 만득이는 이렇게 청승과 너스레를 함께 떨었다. 만삭이 되어 들어닥치던 아람 번 밤송이처럼 걷잡을 수 없이 아기를 쏟아놓던 딸적에 놀란 가슴 때문이겠지만 황영감을 무슨 발작처럼 급히 예식을 서둘렀다. 며느리 될 여자가 뉘집 딸이고, 몇 살 먹고, 뭐 하던 여자라는 것에 대해 일언반구 묻는 법도 없이 종점에 있는 슈퍼마켓 2층의 허름한 예식장을 빌려 때묻은 웨딩드레스를 입혔다. 만득은 부득부득 해산하서 나서 시내 중심가 호텔 예식장에서 양가 친척과 친구를 다 불러모아 성대한 결혼식을 올리겠다고 고집을 부렸지만 황영감의 우격다짐엔 당하지 못했다. 아무도 초대하지 않아 내막을 아는 이웃사람만 몇 모인 식장은 썰렁했다. 특히 제일 큰 걸로 빌려다는데도 지퍼를 올리지 못해 옷핀으로 대강 찡궜어도 허리가 한뼘도 넘게 벌어져서 속치마가 드러난 신부의 웨딩드레스 차림은 차마 눈뜨고는 못 볼 꼴불견이었다. 황영감이 해도 너무한다 싶게 날조한 것처럼 엉성한 결혼식이었다. 그래도 입심 좋고 명랑한 만득이는 몇 명 안되는 하객한테 이건 오픈게임이고 곧 본게임이 있을테니 기대하시라고 익살을 떨었다.


 “저런 싸가지 없는 놈을 봤나? 입이 헤프면 맡천이라도 굳던지, 밑천이 헤프면 입이라도 굳던지, 둘 다 헤퍼가지고 설라문에 이런 망신당하는 것도 모르고… 쯧쯧, 집안이 망할려니까”


 황영감 말투에 의하면 오로지 만득이를 망신주려고 그 결혼식을 꾸민 것 같았다. 아무튼 처음 구경하는 진풍경이었다. 모두 킬킬대고 수군댔다. 그러나 나는 웨딩드레스의 허리 다트가 터질 것처럼 부푼 신부의 배를 보는 순간 별안간 가슴이 심하게 울렁거리면서 그 아기를 내 손으로 받아내고 싶다고 생각했다. 식장에서 돌아와서도 온종일 그 생각에서 헤어나질 못했다. 모체로부터 완전히 만출되기도 전에 벌써 눈을 뜨고 이 세상을 보던 신선하고 정갈한 아기의 눈을 또 한번 보고싶다는 갈망으로 심장이 죄어드는 것 같았다.


 

 나는 비록 소파만을 전문으로 한 지가 근 30년이지만 황영감에게 내 쪽에서 부탁한다면야 그쯤은 쉽게 승낙해 줄 줄 알았다. 황영감의 인색한 성품을 생각해서 싸게 해준다거나 오래 세들어 산 정리로 거저 해주마고 할 속셈까지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황영감은 내 부탁을 일언지하에 거절하면서 차마 못할 소리까지 했다.


 “그 말도 안되는 소리 좀 작작 하슈. 내가 아무려면 내 첫손자를 사람백정 손에 맡길 성싶소”


 그러고도 미진한지 부정탄 것처럼 당장 소금이라고 뿌리고 싶은 얼굴을 했다.


 이런 동네서 이런 짓을 오래 하다 보면 거느린 창녀의 성병 치료 하러 오는데 따라온 포주가 어깨를 툭툭 치면서 선생님 대신 여보당신 하면서 숫제 동업자 취급을 당하는 일도 있었다. 계집의 밑xx으로 돈벌긴 너나 내나 매일반이란 그들의 태도를 나는 크게 탓하지 않았고 그런 사람은 그런 사람 대접하면서 반죽좋게 살아왔다. 그러나 황영감한테서 들은 사람백정이란 소리는 가슴에 못이 박히는 것처럼 쓰라렸다.


 만득이댁은 예식 올린지 사흘 만에 종합병원 산과에서 아들을 순산했다. 나는 황영감한테 받은 가슴 아픈 수모에도 불구하고 퇴원한 아기를 보러 들어갔다. 아기는 내가 처음 받은 아기를 쏙 빼닮아 있었다. 나는 그 아기를 받은 누군지 모르는 산과의사에게 맹렬한 질투를 느꼈다. 그리고 황영감한테서 받은 수모 때문에 잠시 단념했던 아기를 받고 싶은 욕심이 드겁게 재연하는 걸 느꼈다. 만득이 애기만 애길까 보냐. 의사짓을 그만두기 전에 꼭 한번은 애기를 받아보고 말리라. 처음으로 이 세상을 보는 아기의 신선하고 정결한 눈과 힘찬 울음소리에 접하고 싶은 갈망으로 심장이 죄어들었다.


 그때부터 카운트다운이 시작됐다. 그러나 그 때는 앞으로 60일이나 남아있었다. 설마 60일 안에 산모 하나 안 걸릴라구. 60일, 50일… 10일, 9일… 앞으로 사흘밖에 남지 않았다.


 오늘도 세 건의 소파수술과 두 건의 성병치료가 있었다. 그뿐이다. 나는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농기구를 팔던 경성상회는 지금 식료품 상회지만 간판은 아직도 경성상회다. 한문간판 단속때 한글로 고쳐썼을 뿐이다. 한글간판 속의 <서울 그로서리>라는 알파벳엔 만득이의 입김 같은 게 느껴져 절로 웃음이 난다.


 “요구르트 하나 주세요”


 신문을 보고 있던 황영감이 흘긋 한번 쳐다보고 냉장고에서 요구르트를 큰 것으로 꺼내준다. 나는 그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안채로 들어가기 위해선 가게를 통하는 게 편하기 때문에 통행세처럼 그걸 한 병 사서 쪽 들이켠다. 모로 앉은 황영감의 목고개에 힘줄이 처참하도록 두드러져 보이고 구레나룻이 서릿발처럼 희다. 나는 가슴이 뭉클하면서 황영감이 요새로 부쩍 더 늙었다고 생각한다. 그런 뭉클함에는 어쩔 수 없이 아래 위층 한지붕 밑에서 30년을 같이 산 사이의 미운 정 고운 정이 엉겨 있다. 모로 앉은 황영감이 신문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말세야 말세야라고 중얼거린다. 그에게 말세 아닌 날은 없다. 허구한 날이 말세다. 만득이한테서 딸을 보지 않고 딸을 강간한 놈팡이만 보고, 수출액보다는 수입액에 밝고, 우리 모두 얼마나 잘살게 됐나보다는, 우리 모두의 빚이 얼마나 늘어났나에 도통한 그의 심보는 모든 사물, 모든 사람 사는 켯속의 그늘만을 보니까.


 하긴 황영감은 자신만의 그런 특이한 시선 때문에 어디서 둥둥 북소리 나면 우선 어깻춤 먼저 추고나서는 소갈머리 얕은 이웃에 비해 사람이 어딘지 어렵고 줏대있어 보이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내가 여자들의 얼굴 보다는 밑xx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있다고 해서 여자들을 남보다 더 안다고 할 수 없는 것처럼, 그가 세상사에 그늘을 보는 눈이 유별난 게 어떻게 남보다 세상사를 더 잘 아는 게 될 수 있으랴. 나는 엉뚱한 이치를 꾸며대면서까지 그에게 동병상련 격인 연민을 느끼려 든다.


 

 “아기 많이 컸죠?”


 나는 아기를 보러 들어간다는 뜻으로 이런 말을 남기고 안채로 들어갔다. 만득이댁은 웃음이 헤픈 여자다. 아기 자랑을 할 대도 남편 험담을 할 대도 시아버지 때문에 속 썩는 얘기를 할때도 그저 싱글벙글이다. 그래 그런지 아기도 잘 웃는다. 제법 눈을 똑똑히 맞추고 나서 벙글 입이 헤 벌어진다. 아기를 받아보고 싶다는 어거지 같은 생각을 달래러 들어왔건만 되레 그 생각을 좀 더 쥔 결과가 된다. 그 소망을 못 이루고 나의 직업에서 아주 손을 떼도 말면 죽는 날까지 비참한 신세를 못 면할 것 같다. 그러나 앞으로 사흘밖에 남지 않았다. 단지 사흘밖에.


 


2 이틀전


 


 끔찍한 꿈이었다. 내 손에 박힌 못이 암종이 되어 온몸의 살갗으로 무섭게 퍼지는 꿈에서 깨어나려고 몸부림치면서 아스라이 악머구리 끓듯 하는 한여름밤의 개구리 소리를 들은 것처럼 느껴다. 내가 나를 다방면으로 공격해 오는 이질적인 노린내와 무성한 가슴의 털과 동앗줄처럼 길고도 힘센 사지와 바윗덩이처럼 육중한 체중으로부터 벗어나려고 몸부림치면서 듣던 것도 개구리 소리였다. 그 때, 그 개구리 소리는 인간들의 전쟁과는 아랑곳없이 너무도 태평스러워서 당장 당하고 있는 게 설마 꿈이겠지 생각하는 걸로 나의 의식을 비몽사몽간으로 흐렸었다.


 그때와는 거꾸로 비몽사몽간에 들은 악머리구 끓득 하는 소리 때문에 차츰 나는 깨어났다. 나는 우선 그게 꿈이었다는 걸 확인하기 위해 손에 박힌 못을 만져보고 잠옷 속으로 손을 넣어 가슴과 배와 허벅지를 쓸어 본다. 55세까지 한번도 애를 낳아 보지 못한 여자의 살찌고 노쇠한 살갗의 감촉은 명주실처럼 부드럽고 탄력없을 뿐 거슬리는 건 아무것도 없다. 꿈이었군. 그까짓 못, 앞으로도 몇 달만 일손을 놓으면 깨끗이 풀리리라. 그래도 역시 마음은 언짢다. 꿈에서 온몸의 살갗으로 암종이 되어 퍼진 못이 손에 박힌 못이 아니라 심장에 박힌 못인지도 모른다는 엉뚱한 생각이 들면서 가슴이 답답하다. 나는 오랜 생활의 습관으로 침실의 창을 연다. 아스라이 들리먼 악머구리 끓는 소리가 확성기를 댄 것처럼 별안간 커지면서 방안으로 쏟아져 들어온다.


 요새 새로 생긴 교회에서 들려오는 새벽 예배보는 신도들의 울음소리였다. 그 교회에 모이는 신도들은 허구한 날 그렇게 통곡을 했다. 나는 그 소리를 들을 때마다 내 속에 통곡하고 싶은 욕망과 한 방울의 눈물도 못 짜내리라는 확신이 같이 있는 걸 느꼈다. 아직 이른 새벽이다. 경성상회 이면의 동네가 남빛 어둠에 잠겨 있다.


 이틀밖에 남지 않았다. 이틀밖에… 잠이 완전히 깨면서 맨 처음 떠오른 생각은 이사갈 날이 이틀밖에 남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살아 있는 애기를 받아낼 가망도 앞으로 남은 이틀로 줄어들었다.


 우단의자가 놓인 남창과는 반대쪽에 나의 살림방과 진찰실 겸 수술실이 있다. 살림방에서도 수술실에서도 쉽게 구태의연한 ㄱ자 아니면 ㄷ자의 지붕이 무질서하게 밀집한 퇴락한 동네가 내려다보인다. 서울의 눈부신 발전은 귀 있고 입 가진 사람이라면 아무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 우리 모두의 상투어가 되었건만, 어떻게 된 게 나의 단골들이 살고 떠나가고, 들어오는 이 동네는 내가 처음 개업할 무렵과 별로 달라진 게 없다. 한옥도 아니고 양옥도 아닌, 일제말기 한창 물자가 궁핍할 때 들어선 날림 양기와집들은 아무리 집 없이 살아도 세간라도 좀 반반한 거 가진 사람이라면 아무도 안 부러워하게 간살이 좁고 구질구질하고 늙어빠졌다. 더군다나 경성상회를 위시한 이층 삼층의 상점들이 늘어선 한길로부터 지금은 복개를 했지만 10여 년 전까지도 열린 채로 있던 더러운 개천을 향해 서서히 지대가 낮아지는 웅덩이 같은 동네라 여름마다 물난리를 안 겪고 넘어가는 일이 드물다. 한 집이 차지한 평수가 거의 30평 미만이어서 헐고 신축을 하려고 해도 허가가 안나온다던가. 그래서 돈을 번 사람은 지딱지딱 딴 동네로 떠난다. 몇 집을 사서 터서 새 집을 짓는 방법도 있겠으나 그래봤댔자 빈촌 속의 호화주택을 누가 알아줄 것인가. 그것을 무릅쓰고 그런 어리석은 짓을 할 만큼 이 알량한 동네에 애착을 가진 사람이 있을 리도 없고, 그래놓으니 세상이 온통 잘살게 됐다고 떠드는 소리가 이 동네선 한낱 풍문에 불과했다. 그러나 풍문도 못 듣는 것보다야 얼마나 좋은가.


 

 모두 겉보기보다는 잘산다. 풍문으로 들은 대로 제각기 흉내는 다 낼 줄 안다. 만득이가 제 월급보다는 즈이 회사 수출고를 믿고 씀씀이가 헤프듯이, 어디서 둥둥 장구 소리 나면 얼씨구 엉덩춤 먼저 추듯이 실속없이도 잘들 산다. 우선 살림만 하는 여편네들의 속옷과 사타구니가 창녀의 것처럼 깨끗해진 것만 봐도 그 동안 얼마나 잘살게 됐나를 알 수가 있다.


 창녀의 사타구니와 정숙한 여자의 그것과를 감히 비교하는 것은 정숙한 여자에겐 모독이 되겠지만 나는 다만 외관을 말하고 있을 뿐이다. 상식적으로 창녀의 것은 더럽고 정숙한 여자의 것은 깨끗한 걸로 돼 있지만 육안을 통한 관찰에 의하면 그와 정반대다. 어떤 창녀의 그곳은 거의 백치의 얼굴처럼 청결하다. 그러나 자기의 그곳이 가장 정숙하다고 믿는 여자일수록 그곳의 불결에 파렴치하다. 그것은 마치 뉘집에서나 응접실이 가장 깨끗한 것과 같은 이치이리라.


 이 동네서 창녀가 거의 자취를 감추고 나서 가장 눈에 띄가 달라진 건 교회당이 많이 생긴 거다. 인구가 밀집해서 동외에 가면 늘 차례를 기다려야 할 만큼 복작대지만 면적으로 봐선 과히 넓지 않은 동네에 교회당이 일곱 군데나 생겼다. 내가 이 동네에 자리를 잡을 때만 해도 한 군데도 없었다. 교회당은 자리를 잡았다 하면 해마다 다르게 불어나고 치솟는다. 이 동네서 번영이 풍문이 아닌 곳은 오로지 교회당 밖에 없다. 일곱 개의 교회당은 다같이 예수님을 믿을 터인데도 교파가 다른 제각기의 간판을 가지고 더러는 신도의 이동도 있는 모양이지만 신도가 모자라는 교회당은 없는 모양이다. 최근에 생긴 교회당은 무슨 교파인지는 모르지만 매일 아침 신도들이 모여서 처음엔 울다가 나중에는 박수를 치면서 환희에 찬 목소리로 거룩한 하나님을 찬송하고 헤어진다. 그게 그 교파의 예배방식인가보다. 신도가 아닌 이웃을 위해선 별로 바람직하지 못한 예배방식인데도 새벽의 울음소리가 하루가 다르게 드높아지는 걸 보면 그 교회의 교세도 착실히 불어나고 있음에 틀림이 없으리라. 신도들의 반수 이상이 여자들이다. 그러니까 나의 단골들이기도 하다. 그들이 울면서 기구하는 건 뭘까. 허구한 날 어디서 저런 지겨운 통곡이 치받치는 걸까. 원치 않는 애기를 뱃속에 가지도 나를 찾아봤을 때 그들은 거의가 다 당장 죽고 싶은 절망적인 얼굴을 하고 있게 마련이다. 그러나, 그것이 안전하고도 정확하게 제거됐다는 것만 알면 그들은 당장에 개운하고 근심없는 얼굴이 됐다. 그들의 고통을 털끝만한 잔재도 안 남기고 뿌리 뽑아내는 내 솜씨는 참으로 영검했다. 마음속에 여자가 받는 그런 고통에 대한 뿌리깊은 증오가 있음으로써만 그럴 수 있는 일이었다. 그들을 고통으로부터 해방시킨 건 나였다.


 그런데 그들은 허구한 날 내 새벽잠을 깨우면서 서럽게 통곡을 한다. 도대체 저들을 울게 하는 또 다른 고통을 뭘까? 하나님도 그것을 나처럼 족집게로 집어내서 보여줄 만큼 영검하진 못하리라. 그런데도 교회는 늘어나고 치솟는다.


 

 언젠가 나는 이 교회, 저 교회로 옮겨다니는 나의 단골인 가정부인한테 그 까닭을 물었었다. 내딴에 그 여자를 무안줄 마음보다는 각 교파간의 특색에 대해 뭘 좀 알까 해서였다. 그 여자는 전에 다니던 교회는 병을 잘 고쳐준다는 소문을 듣고 지병인 신경통이 날까 해서 다녔는데 지금 다니는 교회는 재수를 좋게 해준다고 소문이 났기에 남편 돈벌이나 잘될까 해서 옮겨갔다고 했다. 그렇다면 새벽마다 통곡의 자리를 마련한 교회선 무슨 약속을 내걸었을까?


 하나님 아버지, 저들이 하나님 아버지를 믿는다고 골백번을 맹서해도 하나님 아버지는 저들의 말을 믿지 마소서. 저들은 지금 입으로 하나님 아버지를 찾고 있지만 저들의 밑xx이 무엇을 찾고 무엇을 저질렀는지 저는 다 알고 있습니다.


 나는 이렇게 저들이 울부짖으며 찾는 분에게 으스대는 마음까지 있다. 그러나 나의 속 내밀한 곳에도 뭉쳐서 마침내 딱딱하게 굳은 한 덩어리의 통곡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의구심을 품게 하는 것도 바로 저 새벽의 울음소리이다.


 새벽 어둠이 조금씩 걷히면서 제일 먼저 여기저기서 드러나는 건 교회의 첨탑들이다. 아직도 집들은 젖빛 어둠에 가라앉아 있어서 창을 통해 들어오는 시야가 온통 안개낀 바다 같으면서 문득 교회의 첨탑들이 침몰해가는 선박의 마스트처럼 보인다. 통곡소리는 메마른 아귀다툼으로 변한다. 침몰해가는 선박의 여객들이 서로 먼저 마스트 꼭대기로 기어오르려고 다투는 소리다. 마스트 꼭대기에 아직 사람은 안 보인다. 다투느라 아무도 그곳을 차지하지 못하나 보다. 차지하건 못하건 결과는 마찬가지다. 어차피 선체는 침몰할 것이므로.


 어둠이 점점 더 엷어지고 ㄱ자 ㄷ자의 지붕이 어렴풋이 떠오르면서 마스트 끝까지 기어오른 사람이 보이는가 했더니, 그건 사람이 아니라 텅 빈 십자가였다.


 이틀밖에 남지 않았다. 마지막으로부터 둘째날은 빠른 속도로 밝아오고 있다.


 첫 번째 환자는 성병치료를 받으러 다니는 화영이라는 창녀였다. 이 동네 살지는 않지만 전에 여기 살다 떠난 포주들이 보내오는 창녀들이 아직 쏠쏠히 있었다.


 오늘은 포주인 전마담까지 따라왔다. 전마담도 이젠 많이 늙었다. 황영감과는 또 다르게 스산하면서도 울긋불긋 원색적인 전마담의 늙음이 남의 일 같지 않게 민망하고 측은하다. 그러나 나는 겉으론 심히 무뚝뚝하다.


 “웬일이야 전마담이 다 따라오고… 참 사람 귀하네. 요샌 고작 저 화영이가 그 집 딸러박슨가보지?”


 나는 화영이를 진찰대에 뻗쳐 놓고 나서 대기실에 얼굴을 내밀고 퉁명스럽게 한마디 했다.


 “아냐요. 아무려면 내가 그깐년 밑xx 소식이 궁금해서 따라왔을라고요. 선생님, 내일까지만 영업하신다며요”


 “그래. 왜 섭섭해?”


 “그럼 내가 뭐 선생님처럼 목석일 줄 아슈. 섭섭도 하고 부럽기도 하고. 난 언제나 그놈의 영업 그만두고 편히 살아볼꼬?”


 전마담이 담배를 피워물며 한숨을 푹 쉰다. 살찐 손의 팥죽색 매니큐어가 불결하고 처량해 보인다.


 “그 돈 다 뭐하고 우는 소리야?”


 나는 이렇게 내뱉고 대기실 문을 탁 닫는다. 전마담은 농업학교가 미군부대였을 적부터 단골인 양공주 출신의 포주다. 그녀도 내 신세를 많이 졌지만 그녀가 데리고 있는 아이들도 멀든 가깝든 꾸준히 나한테로 보내는 진국 단골이다. 오랜 단골이면서도 여보 당신이라고까진 안하고 깍듯이 선생님으로 불러주긴 하지만 나의 일이나 자기 일을 똑같이 영업으로 부르는 말투 속엔 의심할 여지없는 동업자 의식이 깔려 있다.


 

 진찰과 치료를 끝마친 화영이가 묻는 말도 언제부터 영업해도 되냐는거였다.


 “내일서부터라도 해도 되겠지만 핑계 김에 며칠 더 쉬게 해줄까?”


 “안돼요, 의리가 있죠. 너무 오래 쉬어서 엄마한테 미안해 죽겠는데요”


 “그래? 그럼 내일부터 당장 의리를 지키렴”


 나는 씹어뱉듯이 말한다.


 “선생님, 그래도 우리 엄마만한 엄마도 드물어요”


 화영이 늘씬한 가랑이에 팬티를 끼면서 포주를 변명한다. 화장은 야하지만 본바탕은 수수한 얼굴이다. 그러나 그녀가 팬티를 벗고 진찰대에 가랑이를 벌리는 동작은 군더더기 없이 극도로 세련되어 일종의 직업미 같은걸 느끼게 한다. 나는 그녀를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세 사람이 다 대기실에 모이자 일종의 가족적인 무드 같은 게 조성이 된다.


 “요 앞길이 지금의 곱절로 넓어진다니 이 동네 수났군?”


 “글세 말야. 전마담도 그 집 그냥 갖고 있었으면 부자될 뻔했잖아?”


 “아유 그까짓 옛날 얘긴 해 뭘해요. 그렇게 부자될 뻔한 거 놓친게 어디 한두번인가”


 “우리 엄마 이번에 또 큰 손해 봤어요, 선생님”


 “또 부질없는 욕심을 부렸겠지 뭐”


 “선생님도 내가 언제 한눈 파는거 보셨어요? 되나 안되나 한우물만 파건만도 사고가 연발이니, 이 노릇도 이제 그만 해먹으라는 팔잔가 싶은데 뭐 모아놓은 게 있어야죠”


 “무슨 일인데 그렇게 풀이 팍 죽어가지고 그래?”


 “별일도 아냐요. 늘 있는 일이죠. 돈 많이 든 애가 빚만 들입다 져놓고 도망을 갔지 뭐예요”


 “찾겠지 뭐, 다시 기어들던지”


 “찾을 마음이 있어야 찾죠. 누가 빼내 갔다면 내 성질도 가만히 당하고만 있는 성질은 아닌데 죽자사자 연애하는 남자따라 도망을 갔다니 그만 마음 약해서 행복을 빌 수 밖에요”


 “전마당 천당가겠어”


 “선생님도 아시잖아요, 나 연애 좋아하는거…”


 전마담이 쓸쓸하게 웃는다.


 “화영이도 빨리 연애해야겠다. 서러워서라도…”


 “서럽다고 뭐 연애가 되나요”


 나는 늘 거부하는 마음이면서도 너무 오랫동안에 걸쳐 서로를 알아버려 이제 어쩔 수 없이 되어 버린 가족적인 무드에서 편안히 마음을 푼다.


 “그나저나 집 헐리는 사람만 억울하게 됐잖아요. 경성상회만 안 헐렸으면 선생님도 아픙로 10년은 넘어 더 영업하실 수 있었을걸”


 “아냐, 딱 알맞게 그만두는 거야. 막상 날짜까지 정하고 보니 더는 누가 죽인대도 못할 것 같아”


 “황영감은 어데로 떠난대요? 워낙 구두쇠라 한밑천 잡아 놓았겠지만…”


 “집터가 이 근처선 제일 넓으니까 보상금도 꽤 받았을걸. 가게터 달린 반반한 양옥을 사서 가게 물건도 그대로 옮긴다던데”


 “그럼 나중에 봅시다. 선생님 영업 그만둔다니까 내가 젤로 한팔 떨어지는것 같네요. 약도나 하나 그려줘요. 성냥 사갖고 집구경 가도 되죠?”


 

 “안돼. 양반 동네 가서 양반 행세 하면서 살 참인데 전마담이 뭣하러 찾아와”


 나는 그러면서도 약도를 그렸다.


 “난 오지말라는 덴 더 드나드는 취미니까…”


 전마담도 지지 않고 말대꾸를 하고 약도를 간직하고 치료비를 내고 돌아갔다.


 이틀밖에 남지 않았다. 그러다 찾아오는 환자는 성병 아니면 소파를 원하는 임부였다. 이상할 건 하나도 없었다. 그건 내가 닦아 놓은 길이었다. 궤도를 수정하기엔 이미 때가 늦었다. 이틀 밖에 남지 않았다. 그런데도 나는 내 손으로 애기를 한 번만 받고 나서 이 일을 그만두고 싶다는 바람을 못 버리고 있다.


 그런 나의 바람을 비웃듯이 오늘 소파를 한 세 임부의 내용물엔 하나같이 3개월 미만의 작은 태아의 모습이 조금도 손상되지 않고 옹글다. 대개는 손상되어 적출되는데 오늘은 좀 이상했다. 새끼손가락의 끝 한 마디만한 크기의 태아가 인간이 갖출 구색을 얼추 다 갖추고 있다는 건 아마 임부 자신도 모르리라. 다만 몸의 각 부분의 비율만이 완성된 인간하고는 딴판이어서 크기의 대부분을 두부가 차지하고 있다. 그래봤댔자 기껏 완두콩만한 두부인것을 놀랍게도 두 개의 눈이 또렷하게 박혀 있다. 눈꺼풀이 아직 안생겼음인지 그 두 개의 눈이 마치 채송화씨를 박아놓은 것처럼 또렷하게 뜨고 있다.


 내가 처형한 눈, 한번도 의식화 되지 않은 눈, 앞으로 의식화될 가망이 전혀 없는 채송화씨만한 눈이 느닷없이 나의 어떤 지난날부터 지금까지를 한꺼번에 궤뚫어보는 듯한 느낌에 나는 전율한다. 그 채송화씨만한 눈이 샅샅이 조명한 나의 생애는 거러지보다 남루하고 나의 손은 피묻어 있다. 황영감이 그의 첫손자를 이 세상에 맞이하는 일을 내 손에 맡기기 싫어한 걸 나는 이해할 수 밖에 없다.


 그 눈은 의식화되지 않았으므로 오히려 시계가 무한한가. 나의 지난날과 현재와 앞날을 종횡무진으로 간섭하고 내가 의지하고있던 고정관념을 뒤흔들려 든다. 멀리선 포성이, 가까이선 개구리 울음소리 시끄러운 여름밤의 풀섶에서 당한 치욕을 핑계삼아 그후 한번도 남자를 사랑하지 않고도 잘만 살아온 잘난 여자를 감히 지지리 못난이처럼 우습게 본다. 그래서 얻은 알토란 같은 이익에 간섭해서 당장 엄청난 손해로 바꾸어 놓는다. 그러고도 모자라 나를 의사는커녕 의술자도 못된다고 비웃는다. 나의 의술은 환자의 고통을 대상으로 하지 않고 자신의 불순한 쾌감을 대상으로 하고 있으므로.


 그일을 할 때마다 되살아나던, 꽃다운 나이가 박해받은 기억과 박해를 또다른 박해로써 갚으려는 비밀스러운 보복의 쾌감까지도 그 작은 눈을 꿰뚫고 있었다.


 대기실과 상담실을 겸해서 넓고 쾌적하게 꾸며진 방의 남으로 난 창가에 아직도 우단의자는 놓여 있다. 그 의자는 허구한 날, 내 눈에 거슬렸던 것처럼 오늘도 눈에 거슬린다. 손으로 우단천을 결과 반대 방향으로 쓸면 다 바랜 잿빛 속에서 밝은 녹두색이 살아난다. 그 녹두색은 30년 전의 쑥색의 잔재다. 그 의자는 쑥색이었을 적에도 녹두색이었을 적에도 잿빛이 된 후에도 나의 병원과는 안어울렸다. 단 한번 아버지가 거기 걸터앉으셨을 때를 빼고는.


 아버지가 거기 앉아서 뭐라고 말씀하셨더라. 예로부터 의술은 인술이라 했거늘. 어질게 써야 하느니라. 그때도 그랬지만 지금도 그 말씀을 생각하면, 절로 웃음이 복받친다. 그때 이미 나는 나의 기술로 돈버는 수단을 삼기 위한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나는 때때로 어쩔 수 없이 그 우단의자에다 신수 좋은 아버지의 모습을 재현시키도 바라다본 적은 있어도 그때 그 말씁으로 내가 하는 일을 간섭받진 않았었다. 나는 오로지 내 뜻대로 하면서 살았다. 그런데도 문득문득 그 우단의자가 나의 넋을 움켜쥐고 있는 것처럼 느낄적이 있다. 증오로 된 넋이 아닌 또다른 넋을.


 

 아무짝에도 쓸모 없고 어떤 것하고도 안 어울리는 우단의자를 버리지도 못하고 천덕꾸러기 췩릅도 못하고 여지껏 남으로 난 창가에 모셔놓고 있을 수밖에 없는 것도 그런 까닭이었다. 병원에 있던건 단 한 가지도 나의 새집으로 가지고 들어가지 않을 작정을 한지 오래건만 물끄러미 우단의자를 바라보면서 나는 머릿속으로 그 의자가 놓인 새집의 남으로 난 창가를 그리고 있다.


 이틀밖에 남지 않았다. 그러나 오늘 그일이 일어나기엔 너무 늦었다. 나의 간절한 소망에도 아랑곳없이 가을해는 이미 뉘엿뉘엿하다. 나는 입술을 질겅질겅 씹으면서 하릴없이 이방 저방 오락가락 하다가 진찰실 탁자 위에 놓인 걸 보고 질겁을 했다. 빈 페니실린 병속에 오늘 소파한 완두콩에 꼬리가 달릴 만한 크기의 태아가 셋 고스란히 포르말린에 잠겨 있지 않은가. 나는 순간적으로 격노해서 불에 덴 것처럼 급히 간호원 미스 최를 불렀다.


 “미스 최, 이게 무슨 짓이야? 왜 이딴 짓을 했어? 응 왜?”


 나는 무섬 잘 타는 아이처럼 조금은 겁까지 내면서 이렇게 떨리는 소리로 따졌다.


 “선생님, 그거 제가 한 거 아니예요. 아까 선생님이 그렇게 해놓으시고서…”


 미스 최는 되레 내 정신상태가 의심스럽다는 듯이 눈을 똥그랗게 뜨고 항의했다. 미스 최는 그런 실속 없는 거짓말이나 장난을 칠 아이가 아니다. 그러고 보니 내가 그런 것도 같다. 왜 그랬을까? 나는 자신을 이해할 수가 없다. 옹글게 적출되는 태아가 신기하긴 해도 그런 것을 한두 번 본 것도 아니겠다 왜 그런 짓을 했을까. 하긴 태아를 월별로 각각 유리병에 나란히 담가 표본을 만들어 놓은 친구의 병원을 본 적도 있긴 있다. 그때 나는 인간으로 젓갈을 담가 놓은 것을 보는 것처럼 속이 메스꺼웠다. 그런 내가 나도 모르게 인간 젓갈을 담가 놓았으니.


 “선생님, 그럼 버릴까요?”


 미스 최가 페니실린병을 주워들며 말했다.


 “아냐, 버리지 마. 안돼”


 나는 악을 빽 쓰면서 그걸 빼앗았다. 그걸 보관하거나 그밖에 어떻게 할 생각이 있어서 그런 건 아니었다. 다만 버리는 걸 의식하면서 버리기가 싫어서였다. 여지껏 그런 것은 다른 오물과 함께, 버린다는 의식조차 없이 저절로 처리됐다. 그걸 오물 이상으로 생각하는 일을 거치지 않은 무의식적이 행동이었다. 근데 오늘의 무의식은 어쩌자고 그런 엉뚱한 실수를 한 것일까. 나는 그것을 빼앗아 탁자 위에 다시 놓으면서 미스 최가 나 안 볼 적에 그걸 슬쩍 없애주길 바랐다.


 그러면서 나는 자신에 대한 어떤 의구심에 사로잡혔다. 왜 나는 내가 이렇게 이해할 수 없는 거동이나 기색을 보일 때 기분이 더 나빠지는지. 하물며 자기자신에 있어서랴. 하긴 그 우스꽝스러운 날림 결혼식 구경을 하면서 느닷없이 살아 있는 완전한 아기를 받아 보고 싶단 생각을 품기 시작하고부터 나는 나로부터 떨어져나가 내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것이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는 나 자신에 대해서 될 수 있는 대로 따지지 말고 내버려두자고 벼른다. 건드리면 건드릴수록 분리되는 수은처럼 자신이 산산조각날 것 같아 나는 두렵다.


 “선생님, 이따 양장점집 아줌마랑 물역가겟집 아줌마랑 불러서 이거 줘도 되죠”


 미스 최가 플라스틱 접시에 착색하지 않은 명란젓 비슷한 걸 받쳐들고 내 눈치를 살핀다.


 “그게 뭔데?”


 “선생님 정말 오늘 이상하시다. 아까 소파한 태지 뭐예요?”


 

 마침내 미스 최의 얼굴에도 의혹이 스친다. 나는 내가 나를 이상해 하는건 참을 수 있어도 남이 나를 이상해 하는 건 참을 수가 없다.


 “그래 그래, 그 여편네들이 참 그거 부탁했었지. 부르렴. 지금이라도”


 나는 짐짓 관대하고도 명랑하게 미스 최의 소청을 들어준다. 요새 이 동내 여편네들 사이엔 소파한 태반이 젊어지고 예뻐지는 신기한 영약이라는 소문이 그럴듯하게 유포되고 있다. 나는 의사로서 그게 전혀 근거 없다고는 못해도 떠도는 소문처럼 그런 신기한 효과를 거둔다고도 물론 생각하고 있지 않다. 그러나 젊음이나 미용이 다분히 기분이라는 걸 감안해서 그렇게 믿고 먹으면 효과가 있을지도 모른다고쯤은 여기고 있다.


 나한테 몇 번씩이나 가랑이 벌린 단골 여자들도 그걸 먹고싶단 소리를 차마 나에게 직접 못하고, 대개는 미스 최한테 청을 들이는 모양이다. 그럼 나는 그 여자들을 불러들여 미스 최 방에서 먹도록 허락을 해왔다. 뒷구멍으로 빼돌리면 상할 염려도 있고, 또 돈푼이 오고갈 수도 있을 가능성을 미리 막고자 해서였다. 미스 최한테 그만한 청을 들일 만한 단골은 나하고도 곰삭을 대로 삭은 사이라 별로 스스러워하지 않고 그것을 먹으러들 왔다. 그냥 먹기가 비위상하는 여자는 소주를 한 병 슬쩍 차고 들어와 안주로 회 먹듯이 먹는 여자도 있었다. 회춘제라면 물불 안 가릴 때면 이미 여자가 가장 헤벌어지고 뻔뻔스러워졌을 때라 소주 한 잔 들어간 김에 음담패설이 없을 수가 없었다.


 그런 여자들을 구경하노라면 진찰대에 치부를 얼굴처럼 쳐드는 자세로 누워 있을 때하곤 또 다르게 여자의 추악함이 그 극한까지 다다른 것을 보는 것 같은 잔혹한 쾌감을 느끼곤 했다. 그러니까 여자들에게 남의 미숙한 태반을 먹이고, 그 비릿한 입으로 음담을 지껄이게 하는 것도 내 나름의 여자들에 대한 박해의 한 방법이었다. 증오로써 할 수 있는 일 중 박해처럼 자연스러운 일도 없다. 이렇게 끊임없이 나는 내가 여자이기에 받은 치가 떨리는 박해의 기억을 수단방법 가리지 않고 남에게 분배함으로써 나만의 억울함을 덜어 보려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건 결코 덜어지지 않았다. 아무리 남을 비참하고 추악하게 만들어 놓고 비교해도 역시 내가 더 비참하고 추악했다.


 소주 두어 잔과 색다른 안주로 눈가가 도화꽃처럼 피어오른 물역가겟집 아줌마가 된 소리 안된 소리 해롱거리더니 비틀대며 대기실로 걸어나와 우단의자에 앉으려고 했다. 나는 질색을 하면서 그녀를 소파로 떠다밀었다. 양장점집 여자도 따라나와 둘이 나란히 앉았다. 두 여자가 어색하게 심란스러워 하는 게 아마 작별의 말을 하고 싶은 것 같았다.


 “내일 모래죠?”


 조신하고 술도 못하는 양장점집 여자가 먼저 말을 꺼냈다.


 “선생님 정말 병원 아주 그만두실 거예요? 섭섭해서 어쩌지?”


 “지금은 그러셔도 밴 도둑질은 못 그만두실 거니 두고보시오. 쬐금만 쉬시다가 우리가 삘딩 올리거든 한 자리 드릴 것이니까 그땐 사양 말고 나오셔야 해요. 안 나오시면 우리들이 작당을 해서 끌어 내지 뭐”


 물역가게도 양장점집도 이번 도시계획으로 저절로 길가에 나앉게되어 빌딩을 올린다고 대단히 들떠 있었다. 다른 집들도 그렇게 크게는 못 좋아지더라도 불량주택 개선지구에 든다니까 이 동네도 오랜만에 변화가 있을 모양이었다.


 “댁에서라도 단골만은 좀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딴 병원은 몰라도 산부인과는 단골이 좋은데…”


 “그래 그건 맞는 소리요. 나는 딴 사내한테 가랑이 벌릴 생각을 허면 아주 기분 나쁘지도 않더니만, 딴 의사한테 그짓 헐 생각허면 영 기분이 안 좋습디다요. 선생님 어떡하면 그 동안에 애가 안 생기게 헐까요?”


 

 “XX하지 말아요”


 나는 씩 웃으면서 한마디해주고는 자리를 일어섰다. 그들은 그들이 하던 음담의 연장인 줄 아는지 몸을 비틀고 킬킬댔다. 아직 젊었을 때만 해도 동네 여자들이 피임에 대해 상담해 오면 진지하게 조언을 해주고 도표나 기구 같은 걸 나누어 주기도 했었다. 그러나 이 동네 여자들은 맨날 가르쳐야 한글도 못 깨치는 저능아처럼 같은 실수를 되풀이했다. 까다롭게 신경쓰는 일도 싫어했고, 쾌락을 줄이는 방법은 더군다나 질색이었으니, 이제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은 그 말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번연히 그 대답이 나올 줄 알면서도 자주 그런 질문들을 하는 걸 보면 그 쌍소리 자체를 즐기자는 심보이리라. 나 역시 그렇게 말해주고 나면 침을 뱉아준 것처럼 후련해지곤 했다.


 “잘 먹었어요, 선생님”


 “고마워, 미스 최”


 마치 포식을 한 잔칫집의 손님 같은 말을 남기고 두 여자가 돌아가는 소리가 났다.


 나는 내 방 창가에 앉아 하나 둘 불을 켜기 시작하는 동네를 내려다본다.


 황영감네 안마당이 바로 눈앞에 펼친 손바닥처럼 빤히 내다보인다. 마당에까지 불을 밝히고 이삿짐들을 챙기고 있다. 친정 이사를 거들기 위해 왔는지 어제도 안 보이던 황영감의 딸의 모습이 보인다. 그녀도 많이 늙었다. 만득이의 갓난아기를 안고 서서 이것 저것 총찰만 하지 직접 일을 하진 않는다. 때때로 아기하고 볼을 부비기도 하고, 뭐라고 지껄이기도 한다. 아기가 방긋 웃었는지 큰소리로 바쁜 사람들을 불러 모아 자랑스럽게 보여주기도 한다. 가슴속에서 사랑이 마구 샘솟는 것처럼 자애와 행복으로 충만한 얼굴이다. 겉으로는 고모 행세를 하고 있지만 속으로 할머니일 테니 그럴 수밖에 없겠지. 나는 홀린 듯이 눈아래 펼쳐진 어수선한 광경 속에서 황영감 딸의 모습만을 뒤쫓는다. 어째 온몸이 꺼풀만 남은 것처럼 허전해지고 있다.


 나는 황영감 딸의 비밀스러운 악몽에 동참했던 걸로 마치 내가 그녀를 움켜쥐고 있는 것처럼 여겼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그녀는 이미 오래 전에 놓여나서 내가 이해할 수도 손 닿을 수도 없는 고장 사람이 되어 있었다. 아직도 악몽에 갇혀 있는 건 그녀가 아니고 나였다.


 이틀밖에 남지 않은 날이 가족이 붙은 것처럼 빠르게 침몰해가는 느낌에 몸을 맡긴 채 나는 생각했다.


 홀로 사는 여자보다는 더불어 사는 여자가 아름답다고, 더불어 살되 아들 딸 가리지 말고 둘만 낳는답시고 소파를 열두 번도 넘어 했으되 그래도 아들 딸이 서넛은 되는 여자가 훨씬 더 아름답다고, 한번 해보기가 소원인 창녀고, 그보다 더 아름다운 여자는 도망간 창녀가 죽자사자 연애하던 남자를 따라갔대서 찾지 않기로 마음먹은 산전수전 다 겪은 늙은 포주라고, 마치 고정관념을 허물어 거꾸로 쌓듯이 그렇게 생각했다.


 이제 밤도 깊었다. 나는 눈아래 펼쳐지는 야경 속에서 하나, 둘, 셋… 교회당의 뾰족지붕을 센다. 그것은 일곱까지 있다.


 하나님, 제가 지금 연애를 하고 싶다면 얼마나 꼴불견이겠습니까. 조롱거리나 되겠죠. 하나님, 저를 그렇게까지 추악하게 만들지는 마시옵소서. 그대신 바라옵건대 저에게 살아 있는 아기를 받을 기회를 마지막으로 한 번만 주소서. 그게 왜 그렇게 하고 싶은지는 묻지 마소서. 그건 저도 모르니까요. 지금 저에게 중요한 건 왜? 가 아니라 그게 절절히 하고 싶다는 겁니다. 제 소청을 물리치지 마시옵소서.


 나는 생전 처음 기도를 하고 있는 자신을 느끼고 쓸쓸하게 실소했다.


 

 


3 마지막 날


 나의 새집 뜨락이었다. 양지바르고 전망이 좋아 예쁜 집들과 잔디가 푸르고 온갖 꽃이 만발한 마당들을 한눈에 굽어볼 수 있었다. 나의 집 뜨락만이 텅 비어 있을뿐더러 두텁게 콘크리트까지 쳐져있었다. 나는 주머니 가득히 꽃씨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콘크리트 바닥을 발로 쾅쾅 굴러보기도 하고 손톱으로 후벼파 보기도 했지만 요지부동이었다. 나는 내 손발 외에는 아무런 연장도 없었다. 연장이 없어 답답하면서도 나는 연장을 안 가져오길 참 잘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꿈속에서도, 내가 버리고 온 연장은 호미나 곡괭이가 아니라, 겸자, 헤걸, 큐렛 등이었다.


 나는 할수없이 주머니 속의 꽃씨를 훌훌 콘크리트 바닥에 뿌렸다. 뿌리고 보니 채송화씨였다. 조그만 채송화씨들은 순전히 제 힘으로 콘크리트 바닥을 잘도 뚫고 땅속으로 들어갔다. 콘크리트 바닥은 순식간에 푸실푸실 떡고물처럼 곱게 부서졌다. 작은 씨앗들은 단박 싹이 나고 잎이 나더니 색색가지 꽃을 피웠다. 빨강, 노랑, 분홍. 자주… 나의 뜨락은 난만한 채송화 꽃밭이 되었다. 그러더니 꽃들은 저희끼리 싸우기 시작했다. 울고불고 아우성치는 게, 꽃들의 목소리는 아이들의 목소리하고 어쩌면 그렇게 닮아 있는지, 목소리뿐 아니라 꽃들의 얼굴까지 입이 생기고 눈 코가 생기면서 아기의 얼굴을 닮아 갔다. 나의 뜨락은 이제 꽃밭이 아니었다. 수도없는 아기들의 얼굴이 땅속에서 얼굴만 내밀고 원성같이 듣기 싫은 소리로 한없이 울어대는 생지옥이었다. 그만 그만 울라니까, 당장 그치지 못할까. 불도저로 밀고 다시 콘크리트를 입히기 전에 뚝 그치라니까 뚝, 뚝, 그만, 그만…


또 악몽이었다. 꿈에서 깨어났건만 울음소리는 약간 멀어졌을뿐 여전히 계속되고 있었다. 습관적으로 창문을 열었다. 아스라이 멀어져 간 울음소리가 확성기를 댄 것처럼 별안간 커지면서 방안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아침예배 보는 신도들의 울음소리였다. 아직 이른 새벽이다. 교회당의 첨탑들이 침몰해 가는 선박의 마스트처럼 보이고 울음소리는 물에 잠긴 선체에서 선객이 마지막으로 외치는 살려달라는 소리처럼 처절하다. 내 속에서 통곡하고 싶은 욕망과 단 한 방울의 눈물도 못 짜내리라는 확신이 어느 때보다도 심하게 갈등한다.


 오늘이 마지막 날이다. 카운트다운이 제로를 앞둔 긴박감과 도저히 단념할 수 없는 절실한 소망이 두 가닥의 새끼줄이 되어 나를 쥐어짜는 것 같다.


 나는 그 일이 안 일어날 것을 알고 있다. 그러면서도 기다림을 멈추질 못한다. 오늘까지 정상적으로 일을 하자고 했는데도 미스최는 아침부터 작업복 차림으로 자기 짐을 싸고 있다. 이 거리의 끝에서부터 이미 철거 작업은 시작되고 있다. 봄날의 황사현상처럼 창밖의 공기는 부여니 불투명하고 우수수 우수수 날림집 허물어지는 소리도 간간이 들린다. 이까짓 동네가 뭐가 좋다고 흉흉한 마지막 날을 볼 때까지 남아 있었을까?


 황영감, 만득이, 그리고 남의 태반을 신비한 미약인 줄 알고 탐내지만, 실은 자신이 그것의 제공자이기도 한 여염집 여편네들, 동녀처럼 무구한 사타구니를 가진 창녀들과 그녀들이 엄마라고 부르는 포주들…, 그동안 내가 고통을 덜어주거나 비밀에 관계했던 그 사람들을 나는 통틀어 무시하면서 언제고 아쉬움 없이 떨칠수 있다고 생각했다. 나는 항상 베푸는 입장이고 그들은 신세지는 입장이라는 걸 의심해 본 적이 없다. 그러나 이제 와서 생각하니 신세진 건 그들이 아니라 나였다. 속속들이 알고 있어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되어버린 소위 가족적인 관계라는 게 두고두고 아쉬울 사람이 그들이 아니라 나였다. 나는 앞으로 그들에 대해서밖에 생각할 게 없으련만 그들은 곧 나를 잊을 것이다.


 “오늘도 설마 환자가 있을라구요?”


 

 미스 최는 오늘로 떠나고 싶은 눈치다. 퇴직금고 섭섭잖게 지불해 줬고, 며칠 쉬고 나서 입주할 수 있도록 새 직장도 정해줬다. 내일 아침 같이 떠나기로 약속했지만 하루쯤 먼저 떠나고 싶다면 붙잡지 않는 게 야박하지 않은 처사련만 나는 그러지를 못했다.


 “미스 최, 언제 하루라도 우리 병원이 환자 없어 공치는 거 본 적 있어?”


 이렇게 장사꾼 같은 말투로 미스 최를 윽박질렀다. 마침 이때 스무살고 안돼 보이는 앳된 소녀의 얼굴이 계단 밑으로부터 떠올랐다. 소녀는 계단을 다 올리오지 않고 상반신만 내놓고 우선 안의 분위기를 염탐하려는 듯했다. 죄지은 듯 불안한 눈이 내 시선에 붙잡히자 울상이 되더니 꼼짝도 안했다. 올라올 것인가 뒷걸음질 칠것인가를 망설이는 게 너무 역력히 드러나 차라리 애처로웠다. 나는 소녀가 뒷걸음질쳐 주길 바랐다. 고 또래가 그런 울상을 하고 산부인과를 찾는 목적은 보나마나 뻔했다. 나의 마지막 날, 그런 수술은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미스 최가 부랴부랴 가운을 걸치면서 계단 중턱에 못박힌 소녀를 손수 부축해 끌어올렸다. 나의 철저하나 장사꾼 근성에 대한 그녀 나름의 대거리를 하는 셈인 것 같았다.


 다 올라온 소녀를 보자마자 나는 가슴이 울렁거리기 시작했다. 뜻밖에 소녀의 배는 상당히 불렀다. 배를 밋밋하게 하기 위해 엉덩이를 뒤로 쑥 빼고 있었지만 내 눈은 못 속인다. 거의 만삭에 가까워보였다. 어쩌면 소녀는 아기를 분만하려고 왔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보호자가 한두 명 따라왔음직한데 아무도 안 보였고, 내 앞에 홀로 선 소녀는 눈에 눈물이 그득한 채 와들와들 떨고 있었다. 수치감인지 공포감인지 나로선 분간을 할 수가 없었다. 우선 소녀를 안심시키는 일이 급했다.


 “아기를 가졌군요? 그렇지만 그렇게 두려워할 거 없어요. 좀 이른 나이 같긴 하지만 아기를 가질 수 있는 나이라면 능히 낳을 수도 기를 수도 있는 거예요. 자아, 자아, 마음 푹 놓고 선생님한테 자초지종을 얘기해 봐요”


 나는 차트를 집어들며 이렇게 곰살궂게 달랬다. 무뚝뚝하고 말막하기로 소문난 나의 어디서 그런 간사스러운 목소리가 나오는지 내심 신기할 지경이었다.


 “아니에요. 선생님, 저 임신 아니에요. 누가 그래요? 제가 임신했다고?”


 뜻밖에 소녀가 머리를 세차게 흔들면서 앙칼지고도 분명한 소리로 말했다.


 “그래요? 미안해요. 넘겨짚어서… 그럼 여긴 왜 왔나요?”


 “지, 진찰을 받으러요”


 “여긴 산부인과 병원이고, 산부인과 병원에선 어떤 병을 진찰한다는 걸 알고 왔나요?”


 나는 소녀가 혹시 정신이상이나 지능미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퍼뜩 들어서 어린애 다루듯 했다.


 “네, 알아요”


 소녀가 나를 똑바로 보면서 분명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나는 차트에다 이름이랑 주고랑 생년월일 등 형식적인 사항을 적고 나서 증세를 물어보았다.


 언제부터인지 자세한 날짜는 생각 안 나지만 이른봄부터 생리현상이 없어지고 배가 조금씩 불러오더니 뱃속에서 뭔가 꿈틀대는 지가 두어 달 넘었다는 게 소녀의 증세였다. 깜찍한 소녀였다. 목적이 뭔지는 모르지만 소녀는 나를 우롱할 셈인 것 같았다. 이젠 소녀의 눈은 눈물자국도 없이 메말라 있었고, 태도도 썩 후안무치했다. 나는 위신을 잃지 않고 점잖게 말했다.


 “자세한 건 진찰을 해봐야겠지만, 지금까지의 소견은 심중팔구 임신이겠는데”


 “전 남자하고 자지 않았어요”


 

 소녀가 제법 날카로운 목소리로 항의했다.


 “난 아가씰 퍽 어리게 봤더니만 생년월일을 보니 스무살이나 됐군. 그 나이에 곧 탄로가 날 거짓말은 안하는 게 좋아. 미스 최 진찰 준비…”


 소녀는 입만 쫑긋대면서 나를 강하게 노려보았다. 미스 최가 그녀를 끌다시피 진찰실로 들어갔다. 내가 가운을 입고 들어갔을 때 미스 최와 소녀의 실랑이가 한창이었다. 소녀는 막무가내 미스 최가 시키는 대로의 진찰을 위한 자세를 거부하고 있었다. 나는 소녀의 부른 배를 훑어보며 그대로 침대에 눕도록 했다. 소녀는 배를 만져보는 것까지 마다하진 않았다. 육안으로도 보이게 태아는 잘 놀고 있었고 심음도 확실했고 위치도 좋았다.


 “임신이에요. 7개월 내지 8개월…”


 “아니에요. 전 남자하고 자지 않았다니까요”


 소녀가 발딱 일어나 앉으면서 울부짖었다. 그러더니 제 스스로 속옷을 훌훌 벗고는 진찰대에 누우면서 말했다.


 “아닐 거예요. 절대로 그럴 리가 없어요. 똑똑히 진찰해 주세요”


 소녀의 이런 태도는 필사적인 데가 있었다. 진찰을 끝마치고 임신이란 소리를 또 한번 하는 게 너무 무자비한 것 같아 망설여질 지경이었다.


 “아니죠? 선생님, 제가 죽을병이 든 거죠?”


 소녀는 팬티도 안 입고 꼿꼿이 서서 말했다. 나는 내가 되레 허물을 추궁당하고 있는 것처럼 무안해 하면서 더듬거렸다.


 “죽을병이라니 당지도 않아. 엄마도 아기도 건강해. 아가씨는 곧 애엄마가 되는거야”


 소녀가 왈칵 내 가슴으로 쓰러졌다.


 “안돼요. 안돼. 그럴 순 없어요. 나 죽어. 내가 죽을 테야. 난 살 수 없어. 내가 죽을 수밖에 없어…”


 소녀는 몸부림쳤다. 얼굴은 눈물로 범벅이 되고 어깨와 가슴은 경련하듯 꿈틀대고 있었다. 소녀의 눈물이 내 블라우스 깃을 적시고 팔은 내 목고개를 감았다.


 “선생님 어떡하면 좋죠? 전 어떡하면 좋죠? 죽을 수밖에 없어요. 선생님, 선생님…”


나는 소녀를 감싸안았다. 소녀는 내 품안에서 더욱 격렬하게 몸부림쳤다.


 “언니 어떡하면 좋지? 난 어떡하면 좋지. 죽을 수밖에 없을 거야. 언니, 난 당장 죽어 버릴 테야”


 나도 내 뱃속에 원치 않은 아이가 생겼다는 걸 알았을 때 이리에서 개업하고 있는 선배 언니네 병원에 가서 이렇게 울부짖었었다. 소녀를 안고 있는 나에게 그때의 생지옥 같은 고통이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죽고 싶다는 게 그때처럼 거짓말이 아닌 적은 그후에도 그전에도 없었다. 나는 소녀를 그렇게 만든 자에 대해 살의에 가까운 분노를 느꼈다. 나는 소녀와 마찬가지로 눈물이 솟았고 분하고 억울해서 살점이 있는 대로 떨렸다. 이미 그건 소녀에 대한 동정의 분노가 아니라 아득한 지난날로부터 고이고 고인 나의 한이었다.


 “미스 최, 진정제, 진정제를…”


 미스 최가 진정제를 가져다 소녀에게 먹였다. 소녀가 엉엉 울면서 그것을 받아 먹었다.


 “미스 최, 1인분만 더…”


 나도 진정제를 먹고 소녀를 부축하고 내 방으로 갔다. 진정제 때문인지, 격분이란 마냥 지속되는 게 아니어선지, 소녀는 울음을 그치고, 자초지종을 차근차근 얘기했다. 홀어머니 밑에서 중학교까지 다닐 때만 해고 넉넉지는 못해도 단란한 집안이었다고 했다. 홀어머니가 무슨 병인지 미처 병원에 갈 새도 없이 돌아가신 후, 삼남매가 삼촌, 이모, 고모네로 흩어졌   는데 장녀인 소녀는 자진해서 가장 어렵게 사는 고모네를 택했다고 했다. 고모네는 싸구려 하숙을 치면서 근근이 살고 있어 소녀도 자연히 식모처럼 잔심부름을 거들며 잔뼈가 굵었는데 나이들수록 그럴 바에야 차라리 남의 집 식모를 사는 게 월급이라도 제대로 받을 수 있을 것 같아 마땅한 기회를 엿보고 있던 중 그런 일을 당했다고 했다. 소녀는 부득부득 남자하고 잔 일이 없다고 우길 만도 한 게 늘 고모의 딸인 사촌동생하고 같이 자다가 그애가 수학여행을 가서 혼자 잔 날 밤, 잠결에 어둠 속에서 이미 온몸을 짓눌린 연에 깨어나긴 했어도, 죽을 기를 쓰고 버둥거려 그 일을 오래 당한 것 같진 않다고 말하면서 그렇게 쉽사리 아이를 밸 수도 있느냐고 다시 못 미더워했다. 여인숙 비슷한 하숙집에서 어둠 속에서 잠결에 당한 일이라 그가 누구라는 건 짐작도 할 수 없거니와 짐작한들 뭐하냐는 것이었다.


 

 어림짐작이라도 할 수 있으면 그 자를 찔러 죽이고 자기도 죽으려면 또 모를까, 그 자와 어떤 인연을 갖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라고 했다. 내가 그것 비슷한 얘기를 비쳤더니 당장 겨우 가라앉은 발작이 재발하려고 했다.


 “어떡하면 좋죠? 선생님. 그게 확실해졌는데 어떻게 살겠어요? 창피한 것도 둘째예요. 그냥 죽고 싶어요. 아니 뱃속의 그걸 죽이고 싶어요. 그걸 죽이겠어요. 그걸 죽이고 제가 죽는 거예요”


 소녀는 한 차례 체머리를 흔들더니 고개를 꼿꼿이 곧추세웠다. 소녀의 눈이 눈물 없이도 번들거렸다. 그건 명확한 살의였다. 증오의 극한이 살의라면, 살의 중에서도 가장 냉혹하고도 열렬한 살의는 자기 몸 속에 있는 것에 대한 살의라는 걸 나는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그때 그 선배 언니네 병원에서 나를 내 뱃속에 있는 것으로부터 자유롭게 해주지 않았으면 나도 아마 죽음을 택했을 것이다. 결코 창피해서가 아니었다. 내 몸 속에 있는 걸 죽이는 유일한 방법이 내가 죽는 거니까 죽으려고 했을 뿐이다. 어떤 살의도 자기 살 구멍은 터놓으려 들지만, 제 몸 속에 있는 것에 대한 살의는 그 목적을 달성하는 유일한 방법이 자기 목숨을 내놓는 일이라도 마다하지 않을 만큼 엄청난 것이라는 걸 나는 알고 있었다.


 나는 소녀를 죽게 내버려둘 순 없다고 생각했다. 선배 언니가 나한테 베푼 걸 나도 소녀에게 베풀기만 하면 됐다. 더군다나 나는 선배 언니보다 몇배나 그 방면의 도통한 기술자가 아닌가. 그러나 나는 맹세코 세상밖에 나와서 고고의 소리를 지를 수 있을만큼 자란 애기를 떼는 일, 그야말로 죽이는 일을 한 적은 한번도 없었다. 실상 그런 일이 도처에서 얼마나 성행한다는 걸 모르진 않았다. 그러나 나는 거기까지 가진 못했다. 누가 시켜서도 보아서도 아닌, 스스로 지킨 꽤나 엄격한 경계였다.


 하필 마지막 날, 그 경계에서 어쩔줄을 모를 줄이야. 마지막 날이기에 그것만은 지킨 채로 끝마치고 싶고, 마지막 날이기에 그 경계를 한번쯤 슬쩍 넘든들 어쩌랴도 싶다. 그러나 단 한번 그것을 해도 사람백정 소리가 평생을 따라다닐 것 같다. 황영감으로부터 사람백정한테 내 손자를 맡길 성싶으냐는 지독한 수모를 당하고도 황영감하고 의가 상하지 않을 수 있었던 건, 고약한 말버릇 이상으론 안 받아들였기 때문이었고, 그럴 수 있었던 것은 사람백정 노릇만은 안했다는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마지막 날 막상 그 경계를 침범하려니 제일 먼저 황영감의 사람백정 소리가 가슴에 저리게 고깝다.


 그러나 원치 않는 아기를 가진 생지옥의 괴로움은 이미 소녀의 것이 아닌, 내가 지닌 깊고 어두운 곳으로부터 되살아난 나의 것이었다. 나는 조금도 과장 없이 소녀의 고통을 나의 고통으로 하고 있었다. 아니, 소녀를 제쳐놓고 혼자서 살의의 날을 갈고 있었다.


 황영감의 눈치 볼 것 없었다. 나는 여지껏 내 뜻대로만 살아왔다. 남을 받아들인 적이 없다. 혹시라도 아기를 살릴 수 있는 바늘구멍만한 가망이라도 있을까 생각하고 또 생각한 끝   이니 이젠 망설일 게 없다.


 

 나는 마침내 마음을 굳히고, 소녀에게 태아를 처리해 줄 것을 승낙했다. 소녀는 안도와 감사의 눈물을 흘렸다. 소녀가 바란 것이 처음부터 그거였다고 생각하니 내가 마음속으로 겪은 폭풍 같은 우여곡절이 슬그머니 열없어졌다. 그러나 나의 증오가 대상으로 하고 있는 건 이미 소녀가 아니라, 원치 않은 아기, 태어나기 위해서가 아니라 화근이 되기 위해 생긴 아기였다.


 초산이라 진행이 더딜 각오를 하고 일을 시작했다. 우선 자궁 경관에 라미라리아를 세 개쯤 삽입해 놓고 소녀를 편히 쉬게 하면서 경과를 보기로 했다. 저녁때쯤 뜻밖에도 자궁구가 삼횡지나 되게 열려 있었다. 초산부치곤 빠른 진행이었다. 경관도 부드럽고 위치도 좋았다. 자궁내부에 물리적인 자극을 주어 진통을 유발하면서 촉진제를 주사하기 시작했다. 분만은 순조롭게 유도되고 있었다. 소녀가 점점 심하게 자주 고통을 호소해 왔다.


 나는 소녀를 위로하고 잘 견디도록 격려하면서도 한편으론 고함치고 발광하길 기다렸다. 소녀가 마침내 짐승처럼 고함치기 시작했다. 창밖은 몇시쯤 됐는지 헤아릴 길 없는 깊은 밤이었다. 두터운 어둠을 배경으로 검은 거울로 변한 유리창에 비친 나의 땀으로 번들대는 얼굴에선 옴팍한 눈이 잔인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건 고문자의 얼굴이었다. 30년 동안을 고문을 고문으로 갚는 일로 일관해 온 가장 가혹한 고문자는 마침내 발광하려 하고 있었다.


 소녀가 지옥의 소리처럼 처참한 소리로 발악을 하자 나의 밑바닥에서도 고열의 증오가 불타올랐다. 그 순간 태아는 만출되고, 후산도 순조로웠다. 약간의 피비린내가 남은 것말고는 산실로 변한 내 방은 모든 것이 꿈이었던 것처럼 평온했다. 세상 모르게 잠이 든 소녀의 순결하고, 고역을 함께 한 미스 최는 하품을 하며 비틀댔다. 나는 몸뚱이가 눅진눅진 녹아서 흘러내릴 것처럼 고단했지만 뭐라 형언할 수 없는 허탈감이 되레 정신을 말똥말똥하게 했다.


 시계를 몇 번이나 봤건만 지금이 오늘인지 내일인지 알 수가 없었다. 나는 피비린내가 안 섞인 신선한 공기를 마시려고 산실을 빠져나갔다. 그러나 어디에고 피비린내는 조금씩 스며 있었다. 처음 주어진 것 같은 해방감 속에서 피비린내를 배제할 수가 없다는 건 안타까운 일이었다. 나는 무턱대고 서성거렸다.


 어디선가 희미하고도 확실하게 무슨 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처음엔 창밖에서 나는 소리인 줄 알았으나 그게 아니었다. 마치 한고의 무거운 대문을 여닫을 때 나는 소리 같은 끼익하는 소리가 아스라이 멀리서 들리는 것 같으면서 분명히 지척에서부터 들려오고 있었다.


 이상한 예감으로 가슴을 울렁이며 대기실의 밝은 불을 켰다. 제일 먼저 우단의자에 떠올랐다. 그 소리는 우단의자로부터 들려오고 있었다. 우단의자 위에 방금 분만한 소녀의 미숙아가 강보에 싸여 그런 기성으로 아직 목숨 붙어 있음을 알리고 있었다.


 “미스 최, 미스 최, 왜 이런 짓을 했어? 응 누가 이런 짓을 하라고 시키더냐구?”


 나는 큰소리로 미스 최를 불렀다. 미스 최가 잠옷을 꿰다말고 나오더니 되레 기분 나쁜 얼굴로 나를 관찰하듯 바라보면서 말했다.


 “선생님, 참 요새 이상하시더라. 선생님이 그러셨잖아요. 산모 뒤처리는 다 저한테 맡기시고, 선생님은 아기를 맡으셨잖아요?”


 내가? 정말 내가 그랬을까? 살려두지 않을 목적으로 조산한 아기는 배꼽처리랑, 모든 뒤처리를 정상대로 할 필요가 없었다. 엎어놓는다거나 더러는 물 속에다 넣는 동업자도 있다는 소리까지 소문으로 들은 바 있지만, 그렇게까진 안하더라도 방치하면 곧 사망할 수 밖에 없는 게 미숙아의 이슬 같은 운명이다. 그런데 소녀의 미숙아는 아직도 살아 있었다. 내가 모


 

 르게 미숙아에게 베푼 건 완벽하고 따뜻한 신생아 취급이었다. 배꼽처리도 잘돼 있었고 기저귀까기 차고 있었다.


 아아, 이제부터 나는 아무것도 숨길 필요가 없겠다. 나는 아기를 갖고 싶었던 것이다. 기르고 사랑할 수 있는 아기를. 마지막으로 한 번 살아 있는 아기를 내 손으로 받아보고 싶단 소망도 실은 아기에 대한 욕심이 쓰고 있는 가면에 불과했다. 나는 나의 정직한 소망이 모든 억압과 가면을 박차고 생명력처럼 억세게 분출하는 걸 느꼈다.


 나는 가냘픈 기성을 지르는 아기를 품에다 품고 미친년처럼 계단을 뛰어내려 문을 박찼다. 미스 최가 떨리는 목소리로 뭐라고 악을 쓰는 소리가 등뒤에서 들렸다. 도시는 어둠을 빗장처럼 잠그고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큰 병원, 인큐베이터가 있는 큰 병원…, 나는 아기를 품에 안고 쏜살같이 달음질쳤다. 인큐베이터가 있는 큰 병원은 멀고도 멀었다.


 어디선지 야경꾼이 내 덜미를 잡았다, 호루라기 소리가 사방에서 나를 포위했다. 나는 품안엣 것을 조금만 내보이면서 아기, 아기, 내 아기를 살려야 해요, 하면서 서럽게 흐느꼈다. 미친년이군, 내버려둬. 호루라기 소리는 산산이 흩어지고 내 앞길은 다시 열렸다. 그러나 아직도 인큐베이터가 있는 큰 병원은 멀고도 멀었다. 그것보다 더 먼 건 아기를 살릴 수 있는 일루의 희망이었다. 내 의식 속에서 그 희망은 반딧불처럼 너무도 희미하게 명멸했다.


 큰 병원은 아직아직 멀었다. 그러나 나는 벌써 당직의사의 발 밑에 몸을 던지고 아기를 살려달라고 애원하고 있었다. 선생님, 제발 살려주세요. 내 애기예요. 하나밖에 없는 내 애기예요. 지금 낳았어요. 조산이었어요. 벌받은 거죠. 전 애기를 원치 않았거든요. 그러나 지금은 아니에요. 살려주세요. 제발… 안 믿을 거야. 의사는. 난 이렇게 늙어빠진걸. 난 누가 보아도 아기를 낳을 수 있는 여자가 아닌 늙은이일 뿐이야. 그럼 손자라고 해야지. 이왕이면 5대 독자라고 하는 게 좋을 거야. 선생님, 우리 집 5대 독자를 살려주세요. 제발 선생님 은혜는 죽도록 안 잊을 거예요.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눈물이 끊임없이 볼을 타고 흘러내리고 목이 뜨겁게 메었다. 그래도 정작 큰 병원에 당도해서 당직의사한테 품안엣 것을 내밀면서 아무 말도 못했다.


 품안엣 것은 죽어 있었다. 나는 당직의사의 얼굴에 미친년이군, 내버려둬, 하던 야경꾼의 표정과 닮은 연민이 스치는 걸 보았다. 나는 아기를 다시 소중하게 품에 품고 큰 병원을 등졌다. 빨간불을 켠 택시가 내 옆을 천천히 스쳤다. 통금이 해제된 도시가 여기저기서 몸을 뒤척이고 눈을 부비고 있었다. 아기는 어제 태어나서 오늘 죽었다. 어제는 내가 살아 있는 아기를 받아보고 싶단 소망을 건 마지막 날이었다. 내 소망은 마지막 날에야 이루어졌고, 오늘은 새 날이었다. 그게 무효가 되고 나서야 비로소 나는 그게 이루어졌음을 깨닫고 있었다.


 나는 아기를 품은 채 나의 새집이 있는 동네를 향해 천천히 그러나 쉬지 않고 걸었다. 오늘은 새집으로 드는 날이다. 나는 나의 아기와 함께 새집으로 틀 터였다. 아기를 내 새집 뜨락, 양지바른 곳에 짚이 잠재울 터였다. 나의 아기가 죽다니, 그러나 한번도 아기를 못 가져본 여자보다는 아기의 무덤이라도 가진 여자가 훨씬 아름다울 것 같았다. 내년 봄엔 아기가 잠든 땅 위에 채송화씨를 뿌리리라. 내가 죽인 수많은 아기의 한번도 의식화되지 못한 작은 눈 같은 채송화씨를.


 어디만치 왔는지 교회당에서 신도들이 흐느껴 우는 소리가 났다. 그 동네에도 신도들이 울면서 아침예배 보는 교회가 있는 모양이다. 신도들이 꾸역꾸역 모여들고 있었다. 작은 성격책을 들고, 한줌의 통곡을 가슴속에 간직한 신도들이 어디선지 끝없이 모여들고 있었다.


 어느 틈에 나도 신도들 틈에 섞여서 교회당으로 가고 있었다. 작은 아기와 모든 신도들의


 

 울음 위로 범람할 것 같은 큰 통곡을 품고.


 내 속의 통곡은 이제 한 방울의 눈물도 못 짜낼 것같이 굳은 게 아니었다. 다만 크게 터져서 마음대로 범람할 수 있는 장소까지 갈 동안을 주리 참듯 참고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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