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모음] 신기섭 - 뒤늦은 대꾸 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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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백인경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2건 조회 5,133회 작성일 22-11-25 19:51본문
뒤늦은 대꾸
빈 방, 탄불 꺼진 오스스 추운 방,
나는 여태 안산으로 돌아갈 생각도 않고,
며칠 전 당신이 눈을 감은 아랫목에,
질 나쁜 산소호흡기처럼 엎드려 있어요
내내 함께 있어준 후배는 아침에 서울로 갔어요
당신이 없으니 이제 천장에 닿을 듯한 그 따뜻한
밥 구경도 다 했다, 아쉬워하며 떠난 후배
보내고 오는 길에 주먹질 같은 눈을 맞았어요
불현듯 오래 전 당신이 하신 말씀; 기습아,
인제 내 없이도 너 혼자서 산다, 그 말씀,
생각이 나, 그때는 내가 할 수 없었더,
너무도 뒤늦게 새삼스레 이제야
큰 소리로 해보는 대꾸; 그럼요,
할머니, 나 혼자도 살 수 있어요,
살 수 있는데, 저 문틈 사이로 숭숭 들어오는,
눈치없는
눈발
몇
몇,
/
원에게
너도 나를 포기한 사람들 가운데 하나다.
미안하지만 나는 한때 이러한 의심을 했다.
갖은 노래와 농담을 입에 달고 다닌다는 것;
때때로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일이었다. 나는
안다 누군가의 사랑을 받기 위해서는, 애인에게
사과를 깎아주는 너무도 순한 처녀처럼
혹은 다 큰 자식들뿐인 집의 새엄마처럼
칼을 쥐고 떨어야만 한다는 걸. 떨림;
언제나 내 부족함은 바로 그것이었다.
그러나 한번 미워진 사람은,
어떠한 추억을 막론하고,
끝까지 미워하는,
나의 기질은 변함이 없다.
사랑하는 일보다 미워하는 일의
(((떨림)))
내가
오백 년 전 프랑스의 궁중악사였음을 확인한
전생체험; 그때 나는 지루한 궁전을 탈출한 죄로
사형당했다, 수많은 횃불들이 내 몸을 더럽혔지만
나를 위해 울어준 이들은 모두 난쟁이였다.
그러나 그 난쟁이들과 내가 어떻게 친구가 되었는지는
전생체험을 통해서 보지 못했으므로, 너를 만난
이 生에서 나는 그것을 깨닫고 있는지도 모른다.
걱정은, 나는 이 生도 탈출하는 게 아닐까, 하는 것이다.
/
우리집에서나가주세요
영하의 밤 광화문 지하상가 지나며 보네 저 여자의 집, 숨을 내쉴 때마다 조금씩 부푸는 집, 부풀었다가 다시 줄어드는 집, 점점 김이 서리는 흐릿한 집
왜지? 나 문득 지하 단칸방에 살았던 스무 살 겨울이 생각나 그때 허구한날 찾아와 쾅쾅쾅 문을 두드리던 그 여자, 나에게 애걸했네; 우리집에서나가주세요. 나보다 먼저 그 지하를 살다 나간 여자, 동거하던 남자가 죽어서 미쳐 나갔다는. 얼굴이 점점 붉어지는 저 여자의 집, 숨막히는 집, 아주아주 더운 집, 흐믈흐믈 찢어질 것 같은 집
그때 나는 그 여자의 집을, 아니 기억을 망쳐놓은 것, 아무리 방을 쓸어도 그 여자의 긴 머리카락들은 자꾸만 튀어나왔네 내 몸에 붙어 집주인처럼 닦달했네 우리집에서나가주세요. 그들이 남기고 간 벽거울에 화이트로 조그맣게 새겨진 글씨. 그 여자의 이름과 죽은 남자의 이름이었네 그 이름과 이름 사이 싱싱한 사랑의 하트―공포는 소름 돋는 사랑 같았네 밤마다 내 잠 속 가득 자명종처럼 울던 그 목소리, 우리집에서나가주세요우리집에서나가주세요우리집에서나가주세요…… 바람에 휘날리는 집, 훨훨 날아갈 것 같은 집, 그러다 차츰 여자의 몸에 달라붙은 집, 여자가 제 이빨과 손가락 발끝으로 꼭 잡고 눕는 집
그해 겨울, 그 집을 내놓고 떠나던 날 비로소 용서받는 기분. 그러나 지금까지 여러 집들을 지나는 동안 늘 우리집에서나가주세요. 그 목소리만은 끊이지 않았네 언제쯤이면 정착할 수 있을까 가난에 미치는 것은 사랑에 미치는 일과 같아, 언제나 가장 행복한 기억만을 쾅쾅쾅 두드리네 나, 그만, 받아달라고, 한 장의 커다란 비닐, 저 여자의 집을 뜯어내는 자원봉사자들은 마치 철거반 같아, 여자에게 무덤보다 깊은 이불을 덮어주고
/
근황
-먼저 죽은 민수에게
텅텅 빈 화분 세 개
마당에 나뒹굴고 있어
아주 훤히 비었으므로
게워낼 것도 없어 그저
채워야만 하는 마음뿐인 듯
그 마음만으로도 그냥
살아내야 한다는 듯
흐린 하늘의 먹구름 순간 순간씩
햇볕은 조루처럼 내리쬐다 가고
콘크리트 마당 또렷또렷 찍히는
빗방울들, 하나하나 수를 세다
퍼붓는 소낙비를 보고만 있어
내 사는 곳에 냇물이 아주 파랗게 익었거든 조약돌에 귀를 대보면 몸속이 따스해지거든 물 위에 뜬 골뱅이 줍는 아줌마들의 작은 등판 하나하나, 징검다리같이 밟고 오는 산그늘 시원해서 참 좋거든 산란기의 붉은 배를 드러내며 일제히 꽃다발처럼 물 위로 튀어오르는 서거리떼, 군침이 돌거든 물방울 잔뜩 묻은 새파란 상추 같은 산에는 또, 벌써 송이버섯들 소나무 밑에서 귀두를 들어올리기도 해 나는 요새 자꾸 군침만 돌거든 성욕처럼 어찌할 수 없이 능금나무에 물이 올라 초록빛 열매 가지가지 돋아나고. 한복 곱게 차려입은 사과 아가씨들은 아름답고 순진하거든 지난 겨울부터 놀러 온다고 해놓고 영영 오지 않는, 이봐 좀 섭섭한데 거기서 여기까지 고작 몇 발짝이나 된다고.
소낙비 금방 그치고
무지개도 하나 뻗지 않는 하늘
둘러보고 있어 이제 여름도 다
갔어
/
이발소 가는 길
손등에 글씨를 쓰고 날갯짓을 한 문창과 동생,
몸이 무거운 새* 그 날개에 남겨진 글씨; 삶이 무겁다
상투적이지만…… 이발소를 찾아 가는 이 저녁, 삶이
무겁다 벌써 초겨울 낙엽 깔린 佛光洞 골목,
가슴을 내놓고 박수를 치는 여자; 이제 두 돌이 지났다고
많이 컸다고…… (내 눈엔 보이지 않는 무게) 죽은 아기가
크고 있다 나날이 커질 무게, 행복하고 불행한 무게.
그나저나 이발소는 보이지 않고, 제 똥 보고 좋아라 하는
변비 환자같이 떨어진 무게를 굽어보는 홀가분한 가로수들,
처럼 잘라달라고 할까? 뜨거운 이발소 수건에 덮여
벌겋게 익을 얼굴 하얀 거품이 발린 무게 덩어리.
이발사는 칼을 들고 나를 내려다보며 말하리라, 눈 감으세요.
그러나 얼마 만에 와보는 이발소인데 어둡고 한산하다.
의자에 앉아 이발소의 꽃, 달력 속 벗은 여자를 바라본다.
사랑하지 않으면서 발기하는 몹쓸 무게 순간
대문처럼 서서히 열리기 시작하는 전신거울, 거기
환하게 나타나는 붉은빛 통로! 어서 건너오라고
내게 손짓하는 여자! 잘못 온 길인데 제대로 온 길같이
설레다 머릿속의 무게들이 가볍게 떨리고 온몸 가득
퍼져나가는 (((떨림))) 천천히 입이 벌어지고, 삶이……
상투적이어서 말하지 않기로 한다.
* 몸이 무거운 새 : 신기섭 시인의 추모문집
/
'밥을 지어 먹고 앉았다가 창문을 열고 내다보니 옥상에 흰 눈이 쌓이고 있다. 눈이 많이 온다는데 새벽에 출장, 영천行ㅡ무언지 모를 불길한 기분…… 옥상에 쌓이는 눈은 나 아니면 아무도 밟아줄 사람이 없는데. 그런 장소를 가지고 있는 내 생활이 좋다. 다녀와서 발자국 몇 개 꼭 남기리라. 옥상에 눈이 많이 쌓이고 있다.'
신기섭 시인이 자신의 홈페이지에 남긴 마지막 말이다. 안타깝게도 그는 그 출장에서 돌아오지 못했다. - 시집 <분홍색 흐느낌> 해설(권혁웅)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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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분홍색 흐느낌>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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